안희연 / 물속 수도원

2020. 6. 16. 19:49同僚愛/안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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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희연 / 물속 수도원

기도는

기도라고 생각하는 순간 흩어진다

나는 물가에 앉아

짐승이라는 말을 오래 생각했는데

저녁은 죽은 개를 끌고 물속으로 사라지고

목줄에는 그림자만 묶여 있다

개보다 더 개인 것처럼 묶여 있다

그림자의 목덜미를 만지며 물속을 본다

걸음을 재촉하는 사람들

그 끝엔 낮은 입구를 가진 집

물의 핏줄 같은 골목을 따라 모두들 한곳으로 가고 있다

마음껏 타오르는 색들, 오로라, 죽은 개

나는 그림자에 대고 너는 죽은 것이라고 말한다

물 위에 드리워진 나뭇가지

얼굴은 수초로 가득한 어항 같아

나는 땅에 작은 집을 그리고

그 안에 말없이 누워본다

이마를 짚으면 이마가 거기 있듯이

이마를 짚지 않아도 이마가 거기 있듯이

 

 

 

안희연 / 물속 수도원

(안희연, 너의 슬픔이 끼어들 때, 창비, 2015)


https://www.instagram.com/donkgr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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