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6. 17. 14:07ㆍ同僚愛/김중일
김중일 / 황색 날개를 달고 우리는
우리는 우리를 벗어나지 못하는 걸까? 이제 난 이렇게 날개까지 버젓이 달았는데. 수천개의 초록 혀를 빼문 마로니에 그늘이 작고 깊은 못을 만들고 있다. 그 안에 우리가 철새처럼 둥둥 떠 햇볕같이 많은 말들을 쏟아내던 오후. 아직 내뱉지 못한 말들을 둥글게 만 혀가 입술을 뚫고 위협적으로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딱딱하고 뾰족한 혀는 시나브로 구부러진 부리가 되었다. 아직 새장 속을 빠져나오지 못한 말들이 마구 뒤엉키며 구구꾸꾹. 이별을 말하기엔, 지금 이곳은 너무 밝잖아, 사람도 많고, 시끄러워. 서로를 붙잡으려는, 두 팔이 이미 견갑골 속으로 꺾여들어가, 몸속의 장기를 믹서처럼 휘젓고 있다. 즙액처럼 눈물 콧물이 흘러나왔다. 온몸의 장기가 몇배의 중력을 받으며 썩은 사과처럼 뚝뚝 떨어지고 뒤섞였다. 한참 몸속을 휘젓던 두 팔이 축축한 황색 깃털로 뒤덮인 채 견갑골 밖으로 다시 자라났다. 그리고 우리는, 그렇게, 새가, 되었다. 다른 종(種)이 된 우리는 잠시 뒤뚱거리며 어색하게 서로에게서 멀어져갔다. 흘린 과자 부스러기처럼 그동안 함부로 내뱉어진 말들을 눈에 띄는 대로 남김없이 쪼아 먹으며. 우리는 이제 어느 곳으로든 날아갈 수 있었지만 그곳은 항상 그림자라는 검은 새장 안이었다. 환경미화원은 땡볕 아래서 자신의 짙은 우리를 질질 끌며 죽은 비둘기를 쓸어담고 있다. 각자의 검은 우리 속에 갇힌, 기후가 다른 고향을 가진 짐승들처럼, 사람들은 무기력하게 뒤섞이며 오직 배회하는 것에만 목숨 걸고 있었다.
김중일 / 황색 날개를 달고 우리는
(김중일, 아무튼 씨 미안해요, 창비,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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