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중일 / 최선을 다해 하루 한번 율동공원 돌기
2020. 8. 24. 21:56ㆍ同僚愛/김중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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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일 / 최선을 다해 하루 한번 율동공원 돌기
아버지 공원이라도 좀 도세요.
어머니도 이제 건강을 생각하세요.
나는 최선을 다하고 있다.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네 어머니를 신경 써라, 우울증이다.
어머니는 아무 말 없이 설거지를 했고
아버지는 최선을 다해 부엌으로 걸어가
어머니의 이마에 입맞춤했다.
천천히, 천천히, 천천히 그리고 오래도록.
보석함 속의 청혼 반지.
아버지는 푸른 옥빛 상자를 열듯
주름 사이로 손가락을 넣어 어머니 이마를 열고
누런 금반지를 꺼내 내게 건넸다.
봐라, 나는 최선을 다하고 있다.
건강을 위해,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이 지구에서, 나는 최선을 다하고 있다.
오늘도 지구라는 고장난 낙하산이
우주의 길바닥에 터진 풍선처럼 떨어져 있다.
육지라는 커다란 구멍이 뚫린 채, 남은
온통 찢기고 터지고 해진 바다가 바람에 너울져 철썩철썩 나부꼈다.
육지라는 캄캄한 구멍이 뚫린 채, 고장난
지구라는 낙하산을 메고 태양계에 불시착한 사람으로서
나는 최선을 다하고 있다.
이 육지에서,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공원에는 웃자 웃자 역기를 들거나
공중에 어깨를 동여매고
호수를 공전하다가 불시착한 사람들뿐이었다.
그 사람들은 한결같이 말했다.
나는 최선을 다하고 있다.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김중일 / 최선을 다해 하루 한번 율동공원 돌기
(김중일, 가슴에서 사슴까지, 창비,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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