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중일 / 물고기와 산다는 것
2020. 8. 24. 22:04ㆍ同僚愛/김중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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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일 / 물고기와 산다는 것
물고기와 산다는 것에 대해 말하는 상처투성이 한 아이의 두 눈에서 물고기가 뚝뚝 떨어졌다.
물고기를 주워 불에 구웠다.
두툼하고 부드러운 하얀 살을 뜯으며 배를 채웠다.
아이를 잃고 산다는 것에 대해 말하는 한 엄마의 두 눈에서 한 세상이 전봇대보다 길게 뚝뚝 떨어졌다.
떨어진 세상의 표면에 달라붙은 창문이 젖은 물고기 비늘처럼 반짝였다.
떨어지 물고기처럼 세상을 주워, 밤의 창문으로 긁어내고 불에 구웠다.
그을린 세상으로 배를 채우고 뼈만 앙상한 세상을 깊은 밤에 풀어놓았다.
온종일 슬픔을 집어먹고 저녁이면 다시 살이 꽉 차오를 것이다.
아침에 문밖으로 나가려는데 신발 속에 가시처럼 뼈만 남은 물고기가 누워 있다.
김중일 / 물고기와 산다는 것
(김중일, 가슴에서 사슴까지, 창비,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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