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연 / 업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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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희연 / 업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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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 가기 싫어서 죽은 척 하는 강아지를 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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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벌레처럼 둥글게 몸을 말고

나는 돌이다, 나는 돌이다 중얼거리는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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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로 입이 지워져버렸으면, 싶다가도

무당벌레의 무늬는 탐이 나서

공중을 떠도는 먼지들의 저공비행을

유심히 바라보게 되는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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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으로 짓는 죄가 사람을 어디까지 망가뜨릴 수 있을까

이해받고 용서받기 위해

인간이 저지를 수 있는 최대치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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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면 속 강아지는 여전히 죽은 척하고 있다

꼬리를 툭 건드려도 미동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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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동, 그러니까 미동

불을 켜지 않은 식탁에서 밥을 물에 말아 먹는 일

이 나뭇잎에서 저 나뭇잎으로 옮겨가는 애벌레처럼

그저 하루를 갉아 먹는 것이 최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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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있음,

나는 최선을 다해 산 척을 하는 것 같다

실패하지 않은 내가 남아 있다고 믿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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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벌레는 무사히 무당벌레가 될 수 있을까

무당벌레는 자신의 무늬를 이해하고 용서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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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쁜 걸 곁에 두면 예뻐질 줄 알고

책장 위에 차곡차곡 모아온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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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를 깎아 만든 부엉이, 퀼트로 된 새 인형, 엽서 속 검은 고양이, 한쌍의 천사 조각상이

일제히 나를 쳐다보는 순간이 있다

나는 자주 그게 끔찍해 보인다

 

 

 

안희연 / 업힌

(안희연, 여름 언덕에서 배운 것, 창비,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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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instagram.com/donkgr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