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혜미 / 습기의 나날
2020. 11. 28. 00:29ㆍ同僚愛/이혜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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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미 / 습기의 나날
손끝마다 안개를 심어둔 저녁에는 익사한 사람의 발을 만지는 심정으로 창을 열었다
젖은 솜으로 기운 외투를 덮고 잠드는 나날이었다
몸 안의 물기를 모두 공중으로 흩뿌리고서야 닿을 수 있는 탁한 피의 거처가 있다 내 속을 헤엄치던 이는 순간의 바다로 흘러갔다 젖어들고 나서야 문장의 끝이 만져지는 기이한 세계
굳어버린 혀에 안개가 서리면 입속은 수레국화를 머금은 듯 자욱해진다 어깨를 털어내는 새의 깃털 속에서 계절은 문득 오랜 미신이 되었다
이혜미 / 습기의 나날
(이혜미, 뜻밖의 바닐라, 문학과지성사,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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