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1. 28. 05:18ㆍ同僚愛/김중일
변변히 내세울 만한 원한도 없는 우리 대부분의 귀신들은 무일푼으로 구천에 남아 있습니다. 혈관 속을 이백쯤으로 확 내달릴 만한 압력. 생전 그런 건 없었어요. 뭔가 약간씩 부족했죠 뭔가가…… 기쁨도 고통도. 그것이 명부로 가는 티켓 마일리지 같은 것인데 말이죠. 살아생전 정신적 노동에 대한 댓가라고 할까요.
이상한 냄새였어요. 한번도 들어본 적 없는 기이한 신음 같은 그런 냄새였어요. 어쩐지 냄새에 가까운 소리였는데, 굳이 얘기한다면 오래된 사체를 태우는 듯한, 쥐어짜는 듯한. 그때 나는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었죠. 그냥 한번쯤 나를 맛보고 싶을 때, 가만히 혀를 빼어물고 액셀을 끝까지 밟고 있으면 차내에 가득 차오르던 핏빛 적막에 휩싸여. 그때가 아마 백팔십쯤 됐을까요. 시간을 거스르기 시작하는 속도는 어디쯤일까요. 혹시 지났을까요. 하긴 무조건 빠르다고 다는 아니죠. 그 냄새 같은 소리와 그 소리 같은 냄새는 아무튼 적막과의 배합으로 발생하는 것만은 분명해 보였어요.
굳이 말하자면 발가벗겨진 사람 같았어요. 설마 귀신이었겠죠. 나는 차가운 밤의 고속도로에서 이미 공중부양도 충분히 가능한 속도 속에 포함되어 있었어요. 하지만 저와 제 자동차는 총알이 빗발치는 전장에서 얼굴이 까질 정도로 낮은 포복을 하는 용병처럼 시커먼 도로로 빨려들듯 달라붙어 질주했죠. 그 미확인물체 위를 공기처럼 투명하게 통과했습니다.
한국어로 점잖게 표현하자면, '아주 근사'하죠. 말해 뭐합니까. 나의 1977년식 파밀리아레. 사람이든 귀신이든 무엇이든 방금 전처럼 시치미 떼고 투명하게 통과해버리는 능청스러움이라니. 부친 모친 그런 사람들에 대해 내가 그랬듯. 구름 속에서 검은 컨베이어벨트처럼 끊임없이 고속도로가 내려오고 있습니다.
저 멀리 충분한 안전거리까지 확보하고 에프킬라처럼 빛을 분사하며 비행접시가 내려앉았습니다. 기껏해야 파리나 모기처럼 생긴 외계인이 바나나 권총을 들고 내리지 않을까 예상했으나 외계의 합금덩어리에서 내린 건 부친 모친 익숙한 만큼 낯선 그런 사람들. 사실 그럴 줄 알았습니다. 처음이 아니니까요. 그리고 잔소리도.
그들은 말합니다. 얘야, 정말 유치하구나. 어떻게 귀신이 되어서도 상상력이 고작 그정도냐? 실망이구나. 아직 멀었구나. 저는요, 진짜 귀신이 되어서도 이렇게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얘야, 그럼 어쩌겠느냐. 도무지 증거가 없잖니? 너도 아팠다는 증거가.
김중일, 아무튼 씨 미안해요, 창비,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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