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리 「코러스」

2021. 2. 10. 22:17同僚愛/이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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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점심시간만 되면 식당에 가는 대신

빈 교실에 남아 도시락을 먹었고 나처럼

매일같이 도서관에 조용히 앉아 있다가 갔다

그리고 너는 내가 걸어 둔 외투에

항상 자신의 외투를 겹처 걸어 두었다

책을 읽다가 문득 고개를 들면

너는 엽서만 한 수첩에 무엇인가를 적고 있었다

창밖에서 들려오는 웃음소리들이

책장을 넘기는 사이사이에 눈송이처럼 떨어져 녹아내리기도 했다

그럴 때면 읽던 책을 잠시 시옷자로 덮어 두고

옷을 챙기고 나가 운동장 주변을 좀 걷다 들어올까 싶다가도

나의 외투를 뒤에서 끌어안고 있는 너의 외투를 바라보고 나면

그 자리에서 책을 단숨에 다 읽었다

전화를 받으려고 황급히 나가는 네 뒷모습을 하염없이 쳐다보고

두고 간 수첩을 집어 들었다가

가만히 내려놓았다

수선스러웠던 복도에 찾아온 고요 속에서 너는

차가운 벽에 기대 앉아 두 무릎을 감싸고 얼굴을 푹 숙이고 있었다

운동장을 가로지르는 동안 눈발은 점점 거세졌고

마음이 무거워지면 발소리도 따라 낮게 들렸다

나의 외투가 외롭게 걸려 있는 날이 많아질수록

겨울방학은 가까워지고 있었다

감고 있던 파란 목도리를 벗어

네가 늘 앉던 자리에 올려 두었다

모르는 목소리를 따뜻하게 해 줄 수 있을까

주머니에

쪽지 하나가 들어 있었다

 

 

 

from Sharon McCutcheon

 

 

 


 

 

 

이기리, 그 웃음을 나도 좋아해, 민음사,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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