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7. 15. 17:17ㆍ同僚愛/김중일
뉴스속보가 거실 한쪽에서 왕왕거리고
저녁식사 중인 엄마는 다몽증 환자
꾸벅꾸벅 잠결에 내 잠까지 모두 먹어치운다
거대한 태풍 '불면'이 1899년 이후 니이가따현 쪽으로
하루에 일 센티미터씩 북상 중이다
북상 중인 달팽이……
태풍의 이동경로를 따라 장거리주자인 나는
불면의 중심에 가건물로 세워진 재해대책본부가 있는
결승점을 향해 오늘 밤도 달리는 중이다
누군가 내게 묻는다
이봐, 힘들게 너는 왜 하필 지금 잠을 청하려 하지?
오늘 밤엔 재밌는 일도 많은데
나는 적요한 불면의 눈을 향해 줄곧 달리는 중이다
나는 돌풍이 휘몰아치는 불면 속에서
팥죽 같은 잠을 뚝뚝 흘린다
길가의 창문을 티슈처럼 뽑아
모공 속에서 줄줄이 기어나오는 잠을 닦는다
작고 끈적하고 더운 뱀……
순간 지진으로 땅이 길게 갈라졌고, 나는 놀라서 외친다
이크, 뱀을 밟았군
내리던 폭우가 거대한 뱀 속으로 빨려들고
뱀은 적산가옥을 집어삼킨다
사실 코스 옆에서 잠 좀 자 잠 좀 자 연호하는
모든 관중들이 바로 지구에게는 끔찍스런 불면들 아닌가
하릴없는 저 불면의 부스러기들……
나는 달린다 잠이 비 오듯 쏟아진다
양 겨드랑이에 손바닥 발바닥에 기분 나쁘고
나쁜 기분이 들고 미끌하고 뭉클한 뱀 같은 잠이 자꾸 내 발목을 휘감는다
나는 길 한쪽에 분리수거된 아이스박스 속으로
머리를 들이밀고 들어선다
차가운 빙판코스가 내 앞에 펼쳐진다
불면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설국(雪國)이다
밤의 밑바닥까지 하얘진 듯하다*
오늘 밤 이미 그곳은 잠의 나라, 엄청난 잠의 홍수로 인해
혼슈 중북부 니이기따현에서 잠을 자던 12명이 숨지고 2명이 실종되었으며 주택 가옥 2만채가 침수(沈睡)되면서 2200명이 꿈의 대피소에서 피난생활을 시작했다는 소식은
내게 설렘과 흡사한 묘한 안락함을 준다
(사이)
태풍은 거대한 알약 같아 수면제 같아
오늘 밤 비바람은 창문마다
찬 입술을 대고 내게 자장가를 불러주네
(사이)
아직도 나는 미농지보다 얇은 꿈속을 달린다
내 꿈은 불면이 휩쓸고 간 폐허
(사이)
보고 싶다
* 가와바따 야스나리 『설국』의 도입부 변용.
김중일, 아무튼 씨 미안해요, 창비,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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