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재남 「나는 좀 슬픈가 봐, 갈대가 머리칼 푼 모습만 눈에 들어와」
2021. 7. 25. 20:27ㆍ同僚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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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량천을 걷는다
내 걸음은 가난한 곳으로 흐르고
줄지어선 갈대가 무심한 표정으로 천변에 널려있다
나도 갈대가 되어 천변 어느 곳에 주저앉아버릴까
그러면 아무 생각 없이 바람 부는 곳으로 따라 흔들리게 될까
이생에서 잠시 머물다 갈 일을 잊고
하루를 하루 같이 여기지 않아도 되는 것일까
세상 소용없는 것이 손에 잡히는 것이란 걸 생각하면서
그럼에도 꼭 잡아야 하는 것을 또 생각하는 것인데
부질없는 것들과 집착하는 것들을 눌러 앉히는 저녁
밟는 곳마다 땅이 질퍽이는데
천변을 따라가면 내 아이 머무는 너른 풀밭이 나올 테고
갈대를 머리에 꽂은 아이가 이쪽을 보고 있을 테고
저 혼자 가을이 되고 있을 아이가 못내 서러워
수첩에 적힌 지도를 펼친다
그곳은 아직 내 발길이 닿지 못하는 곳
스산한 바람이 계절의 행방을 묻지 않고도 계절을 알아차리는 곳
물색없는 구름이 허리께에 깔린다
나는 할 줄 아는 게 눈동자에 구름을 담아내는 일
미안해, 미안하다 아가야 밖에 할 줄 아는 게 없어서
이생에서 걷는 길이 버겁다
혼자 살아서 보내야 할 계절에 한생이 걸린다
2020 계간 한국동서문학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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