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하 「비어 있는 사람」
2021. 7. 29. 18:15ㆍ同僚愛/이민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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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살만 남은 늑골 사이로
빛과 어둠이 교차하는 지금은 저녁일까 아침일까
십 년 만에 눈을 뜬 것만 같아
끄고 잠든 별빛처럼 지붕도 함께 사라진 것일까
이대로 일어날 수 없다면 의사들이 달려올까 용역들이 달려올까
밤에 지나는 사람은 플래시를 들고 오고
용감한 휘파람으로 제 몸을 끌고 오고
담력 테스트를 하려고 사람들이 몰려올지도 몰라
죽어 버린 장소는 죽은 사람보다 무섭고
벽이 헐리기 전까지 깃드는 건
소문과 어둠뿐인지도 몰라
숨어 있기 좋아서
고양이들은 움푹한 옆구리로 파고들고 헐거운 뱃가죽에 눌러앉았다
뼈가 닳고 있는데 모래가 날린다
모래는 어느 구석에 또 쌓여서 불빛을 부르고 휘파람을 부르고
우리가 다시 사랑을 한다면
태양보다 뜨거운
검은 페인트를 뒤집어쓰고 사랑을 한다면
어떤 체위로 가능할까
십 년 만에 몸을 뒤집고 있는 것 같아
텅 빈 입속엔 구르고 있는 돌 하나
내 것이 아닌 것 같다
혼자 하는 키스처럼
처음부터 물려받은 독백처럼 십 년이 지나도
문패가 바뀐 후에도
이민하, 미기후, 문학과지성사,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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