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보원 「현실적인 잠」
2021. 9. 3. 11:55ㆍ同僚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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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잠이 내게로 왔다 물웅덩이가 없는 아스팔트 도로를 걸어서 이유를 몰라서 괜찮은 일들이 자꾸 일어난다 당신의 잠은 치와와처럼 짖는 밤으로부터 멀어지려고 꿈을 다 썼다 풀 냄새를 맡으러 간다고 쓰인 쪽지가 있다 당신은 차가운 물을 단숨에 마시지 못한다 당신은 마카롱을 오래 물고 있다 생각을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그만하고 싶다 그게 아무래도 멈추지 않았기 때문에 철새들이 방향을 바꾸고 하늘이 빈다
그 밑에서 나는 항상 더 밑으로 가려는 습성이 있다 지하실에선 작은 소리도 크게 들린다 작은 동물이 더 재빠르고 무서워진다 당신의 잠은 자꾸 내게로 온다 당신이 당신의 잠 앞에서 머뭇거리기 때문에 당신이 혼자 글을 쓰고 그것을 혼자 읽기 때문에 나는 소스라치고 그 소스라침을 사랑으로 이해하려고 무던히 애를 써 왔다 나는 몸이 늘어나고 싶다 모든 당신의 옆자리에 앉고 싶다 새벽에 아무도 없는 실내 야구장에 불이 켜져 있으면 이상한 기분이 든다 당신은 당신의 잠에 그렇게 내내 불을 켜 두고 그곳에서 울리는 쇳소리를 듣는다
멈출 수 없는 일들이 자꾸 일어난다 나는 턱을 괴고 그 일들을 보는 걸 멈출 수 없다 어린아이의 태몽을 매번 다르게 꾸며 내는 엄마의 곤란함처럼
녹색 고무 장판에 쌓이는 야구공들을 세어 보다가 또 외투를 껴입다가 나는 당신의 잠을 잠든다 당신을 잊느라 그곳은 춥고 밝다
강보원, 완벽한 개업 축하 시, 민음사,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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