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원효 「앙드레 브르통의 말」

2022. 1. 14. 11:52同僚愛/조원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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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벨이 울려 복도가 깬다고 할 수 있을까 이별의 대화가 시작되기 전에 그림자를 밟았다고 자랑할 수 있을까 장밋빛 비누 받침, 수평적이고 안전한, 그러므로 스페인 소년이 등장할 것 같고, 문을 두드리며 입속에 맴도는 말을 뱉다가, 리볼버 총탄이 떡갈나무에 구멍을 낼 것 같고 경찰이 와도 멈추지 마, 나는 중얼거리며 스페인 소년의 정지된 입술을 한참동안 지켜본다 해가 지는 방, 뜨거운 사과, 오븐 속에 넣어둔 비명, 마을 사람들이 안뜰에다 올가미를 설치해놓는 이미지, 그런 의혹이 부풀어 올라 머릿속은 혼란스럽고 스페인 소년의 걸음은 내 앞을 지나치기 때문에, 나는 낮잠에 빠져들어야 한다 가령, 소파 팔걸이를 짚고 잠에 드는 모습, 커튼 뒤로 숨은 소년의 발가락을 밟고 모른 체 하는 불친절함, 자동차 경적 소리에 놀란 여배우에게 담요를 건네주며, 고개를 갸우뚱하고 저어보는 화면 속, 무수한 혀의 과장들, 경찰 목소리가 뺨을 타고 흘러내리는 비극적인 연출들, 이웃의 고함이 오븐 속 빵을 부풀어 오르게 만들고, 나는 웃었다 웃지 않고 웃었다 불균형한 컵이 추락하므로, 식탁 위에 받침대가 자신의 영혼을 떼어내는 것을 지켜보았으므로, 나 역시 소년의 손을 뿌리쳤다 밀가루가 잔뜩 묻은 얼굴로, 너는 나를 떠날 것 같구나 그런 물음은 하염없이 나를 의심하게 하고, 배게 밑에 숨겨놓은 피스톨을 꺼내 망설이게 하고, 가슴 속에 꽃이 피어오른다는 어느 시인의 구절을 떠오르게 한다 붉은 립스틱을 코끝에 발라본 것들, 마을 사람들이 남몰래 담벼락을 넘다가, 나와 눈이 마주쳤다 침대 아래로 흐르는 코피가 파괴적인가, 소년이 집을 떠나려고 문을 열었다 무더운 여름 속에서, 버스운전사가 핸들을 꺾고, 벤치, 모서리, 개의 이빨 자국과 부딪힌

나의 죽음

안뜰을 지나 올가미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from Pau Casals

 

 

 


 

 

 

2019 웹진 문화 다(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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