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인 「POV」

2022. 4. 20. 16:27同僚愛

728x90

 

비 내리는 가을밤이면 나는 이불 밖으로 발을 내놓고 눕는다 잠든 사이에도 발은 어디든 가길 원하기 때문이다 지금 나는 풀테니 다리 위를 뛰어가고 있다 비가 쏟아지고 바닥은 축축하게 젖어 있고 다리 밑에서 흙탕물이 휘몰아친다

오늘은 나를 태운 비행기가 떠나기 이틀 전이고 나는 내가 사랑하는 토끼 모양 섬을 온몸으로 껴안기 위해 맨발로 빗속을 달리기로 한다 누군기의 로만 바스 누군가의 코니쉬 파이 누군가의 런드리 그것들이 시야를 빠르게 지나가고 나는 이토록 빨리 뛰어 본 적 없이 언덕을 오른다 35도 각도로 기울어진 지붕 위를 내달리면 내 세상도 딱 이만큼 기울어진 것 같아 아늑하고 평온해진다 멀리서부터 감색으로 물드는 하늘 골목에는 민둥한 승용차 껍데기들 그리고 오래된 지붕들보다 조금 더 기울어진 녹색 언덕 아래

구름 조각을 던지고 있는 사람과 원반을 찾아 뛰어가는 커다란 개가 있다 나는 빗속으로 비와 함께 추락한다 구겨진 보닛을 퉁 퉁 두드리면 언제 찌그러졌냐는 듯 다시 판판해진다 내 발자국, 사라진다

로만 바스의 사람들은 목욕탕에 앉아 생굴 먹는 것을 즐겼고 나는 빗속에 투명하게 앉아 다시 자라지 않을 이 언덕을 내려다본다 예고 없이 불쑥 찾아오는 것들을 사랑해 버려서 내 시에는 비가 자주 내린다

이것이 꿈이라는 것을 깨닫자 비가 그치고 구름이 걷히고 새들이 지저귀기 시작한다 이 꿈에서 젖은 버드나무 냄새가 난다

from Chris Henry

 

 

 


 

 

 

2021 문장웹진 10월호

 

 

 

'同僚愛'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세인 「마진 콜」  (1) 2022.04.20
박세랑 「누가 너를 이토록 잘라 놓았니」  (1) 2021.09.05
강보원 「현실적인 잠」  (1) 2021.09.03
강보원 「저택 관리인」  (1) 2021.09.03
김연덕 「white bush」  (1) 2021.08.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