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준 / 야간자율학습
2020. 2. 29. 09:28ㆍ同僚愛/박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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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 / 야간자율학습
저녁이면 친구들은 화장실에서 교복을 갈아입고 주공아파트 단지를 돌며 배달을 했다 성동여실 여자애들은 치마통을 바짝 줄여 입었지만 안장을 높이 올린 오토바이에도 곧잘 올라탔다
집을 떠나면서 연화는 가난한 엄마의 짙은 머리숱과 먼저 죽은 아버지의 하관(下觀)을 훔쳐 나와 역에서 역으로 떠났다
황달을 핑계로 오랫동안 학교에 가지 않았다 책상 밑에 있는 내 침통이 굴러다닐 게 분명했다 졸업은 멀기만 하고 벌어진 잇새로 함부로 뱉어낸 말들이 후미진 골목마다 모여앉아 낄낄 웃고 있었다
박준 / 야간자율학습
(박준,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문학동네, 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