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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재남 「나는 좀 슬픈가 봐, 갈대가 머리칼 푼 모습만 눈에 들어와」
정량천을 걷는다 내 걸음은 가난한 곳으로 흐르고 줄지어선 갈대가 무심한 표정으로 천변에 널려있다 나도 갈대가 되어 천변 어느 곳에 주저앉아버릴까 그러면 아무 생각 없이 바람 부는 곳으로 따라 흔들리게 될까 이생에서 잠시 머물다 갈 일을 잊고 하루를 하루 같이 여기지 않아도 되는 것일까 세상 소용없는 것이 손에 잡히는 것이란 걸 생각하면서 그럼에도 꼭 잡아야 하는 것을 또 생각하는 것인데 부질없는 것들과 집착하는 것들을 눌러 앉히는 저녁 밟는 곳마다 땅이 질퍽이는데 천변을 따라가면 내 아이 머무는 너른 풀밭이 나올 테고 갈대를 머리에 꽂은 아이가 이쪽을 보고 있을 테고 저 혼자 가을이 되고 있을 아이가 못내 서러워 수첩에 적힌 지도를 펼친다 그곳은 아직 내 발길이 닿지 못하는 곳 스산한 바람이 계절의 행방..
2021.07.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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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ình tôi như gió êm giao mùa Em ngày mai có về? Tình tang tôi hát em nghe Chuyện là tôi thấy mình xa Bèn buồn tôi hát tình ca
2021.07.16 -
박준 「세상 끝 등대 3」
늘어난 옷섶을 만지는 것으로 생각의 끝을 가두어도 좋았다 눈이 바람 위로 내리고 다시 그 눈 위로 옥양목 같은 빛이 기우는 연안의 광경을 보다 보면 인연보다는 우연으로 소란했던 당신과의 하늘을 그려보는 일도 그리 낯설지 않았다 박준, 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 문학과지성사, 2018
2021.07.15 -
박준 「84p」
받아놓은 일도 이번 주면 끝을 볼 것입니다 하루는 고열이 나고 이틀은 좋아졌다가 다음 날 다시 열이 오르는 것을 삼일열이라 부른다고 합니다 젊어서 학질을 앓은 주인공을 통해 저는 이것을 알았습니다 다행히 그는 서른 해 정도를 더 살다 갑니다 자작나무 꽃이 나오는 대목에서는 암꽃은 하늘을 향해 피고 수꽃은 아래로 늘어진다고 덧붙였습니다 이것은 제가 전부터 알고 있던 것입니다 늦은 해가 나자 약을 먹고 오래 잠들었던 당신이 창을 열었습니다 어제 입고 개어놓았던 옷을 힘껏 털었고 그 소리를 들은 저는 하고 있던 일을 덮었습니다 창밖으로 겨울을 보낸 새들이 날아가는 것도 보았습니다 온몸으로 온몸으로 혼자의 시간을 다 견디고 나서야 겨우 함께 맞을 수 있는 날들이 새..
2021.07.15 -
김중일 「내 꿈은 불면이 휩쓸고 간 폐허」
뉴스속보가 거실 한쪽에서 왕왕거리고 저녁식사 중인 엄마는 다몽증 환자 꾸벅꾸벅 잠결에 내 잠까지 모두 먹어치운다 거대한 태풍 '불면'이 1899년 이후 니이가따현 쪽으로 하루에 일 센티미터씩 북상 중이다 북상 중인 달팽이…… 태풍의 이동경로를 따라 장거리주자인 나는 불면의 중심에 가건물로 세워진 재해대책본부가 있는 결승점을 향해 오늘 밤도 달리는 중이다 누군가 내게 묻는다 이봐, 힘들게 너는 왜 하필 지금 잠을 청하려 하지? 오늘 밤엔 재밌는 일도 많은데 나는 적요한 불면의 눈을 향해 줄곧 달리는 중이다 나는 돌풍이 휘몰아치는 불면 속에서 팥죽 같은 잠을 뚝뚝 흘린다 길가의 창문을 티슈처럼 뽑아 모공 속에서 줄줄이 기어나오는 잠을 닦는다 작고 끈적하고 더운 뱀…… 순간 지진으로 땅이 길게 ..
2021.07.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