同僚愛/김이듬
김이듬 / 평범한 일생
동그린
2020. 6. 25.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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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듬 / 평범한 일생
나무에게서 나무 냄새가 난다
유칼립투스와 내가 닿았다
나는 작은 숲을 가졌고 나무는 느리게 자란다
뾰족하고 부드러운 나무는 자기가 공기를 바꾸는 줄 몰랐다
대들보나 재목이 되고 싶지 않았다
사람의 꿈은 한층 더 사람으로 살다 죽는 것일까
꽃들이 졌다
이제 층층나무에게서 층층나무 냄새가 나고 나무는 모든 잎사귀로 소리와 향기를 발산한다
가장 무성하고 푸른 시절에 관료들이 왔다
토목공사 현장으로 죽음의 강으로 그루터기를 베어 갔다
전문가란 이들이 숲을 뒤지고 검열해서 오렌지 빛 바다로 군대로 먼 타국으로 싣고 갔다
나는 소멸할 것처럼 작은 숲을 가졌고 내 발목을 심은 곳에 친구의 발목도 있다
너는 말했다 아이도 낳아 보고
늙어서 죽었으면 좋겠어
불타거나 베이지 않고 자연스레 수명을 다해 죽은 나무를 본 적 있니?
보호수로 지정되어 관리받는 고목 말고
폭우가 내리던 밤에 우리는 고시원 옥상에서 나무처럼 서서 죽는 시늉을 해 보았다
우리가 떨어진 데는 낙하산이 많았을 거라고 했다 붙으면 코스타리카 원시림에 가자
먼 데서 온 가로수들이 비바람에 몹시 불안했다
우리가 쓴 자기소개서에는 큰 우리 냄새가 났고
몇 번 죽어 보면 살아날 수 있다고 했지만 영원히 살 것 같은 기분에 두려웠다
김이듬 / 평범한 일생
(김이듬, 표류하는 흑발, 민음사, 2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