同僚愛
이바라기 노리코(茨木のりこ) / 내가 가장 예뻤을 때
동그린
2020. 2. 29. 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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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바라기 노리코(茨木のりこ) / 내가 가장 예뻤을 때
내가 가장 예뻤을 때
거리마다 와르르 무너져 내려
엉뚱한 곳에서
푸른 하늘 같은 것이 보이기도 했다
내가 가장 예뻤을 때
곁에 있던 이들이 숱하게 죽었다
공장에서 바다에서 이름 모를 섬에서
나는 멋 부릴 기회를 잃어버렸다
내가 가장 예뻤을 때
아무도 다정한 선물을 주지 않았다
남자들은 거수경례밖에 할 줄 몰랐고
순진한 눈빛만을 남긴 채 모두 떠나갔다
내가 가장 예뻤을 때
나의 머리는 텅 비고
나의 마음은 꽉 막혀
손발만이 짙은 갈색으로 빛났다
내가 가장 예뻤을 때
나의 나라는 전쟁에서 졌다
그런 멍청한 짓이 또 있을까
블라우스 소매를 걷어붙이고 비굴한 거리를 마구 걸었다
내가 가장 예뻤을 때
라디오에선 재즈가 흘러나왔다
금연 약속을 어겼을 때처럼 비틀거리며
나는 이국의 달콤한 음악을 탐했다
내가 가장 예뻤을 때
나는 몹시도 불행한 사람
나는 몹시도 모자란 사람
나는 무척이나 쓸쓸하였다
그래서 다짐했다 되도록 오래 살기로
나이 들어 아름다운 그림을 그린
프랑스 루오 할아버지처럼
그렇게
이바라기 노리코(茨木のりこ) / 내가 가장 예뻤을 때
(이바라기 노리코, 처음 가는 마을, 봄날의책, 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