同僚愛

이홍섭 / 터미널

동그린 2020. 2. 29.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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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홍섭 / 터미널

​젊은 아버지는

어린 자식을 버스 앞에 세워놓고는 어디론가 사라지시곤 했다

강원도하고도 벽지로 가는 버스는 하루 한 번뿐인데

아버지는 늘 버스가 시동을 걸 때쯤 나타나시곤 했다

늙으신 아버지를 모시고

서울대병원으로 검진받으러 가는 길

버스 앞에 아버지를 세워놓고는

어디 가시지 말라고, 꼭 이 자리에서 서 계시라고 당부한다

커피 한 잔 마시고, 담배 한 대 피우고

벌써 버스에 오르셨겠지 하고 돌아왔는데

아버지는 그 자리에 꼭 서 계신다

어느새 이 짐승 같은 터미널에서

아버지가 가장 어리셨다

 

 

 

이홍섭 / 터미널

(이홍섭, 터미널, 문학동네,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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