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연호 / 이 많은 여름이 교환되려 한다
2020. 7. 4. 13:43ㆍ同僚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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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연호 / 이 많은 여름이 교환되려 한다
흰 건반이 자정인 것처럼
검은 건반은 잠든 사람을 두세 칸 건너뛰며 놓여 있었다
부인들은 죽을 날짜를 혹은 생일을
피아노 음계에서 고르고 있었다
계절이 알고 있는 포유류의 음계는
모유 냄새보다 더 좋은 찌그러진 수학여행 버스들
깨진 창을 네 배에 모조리 쓸어담고
반추동물이 밤새도록 어루만지는
축축한 서너 개의 방에서
파수꾼은 옳다, 혹은 외롭다
그런 날 성인용 기저귀처럼 포도원은 수치스런 곳을 덮어준다
가렸어도 여전히 부끄러운
착용감 드러운 이 생과
이 많은 여름이 교환되려 한다
처음 마주친 생은 내 약점이
일생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공회당 옆 묘지, 수학여행길의 아이들은
꺾인 꽃처럼 너덜거리고
내가 날린 종이비행기의 평화를 섬뜩함으로 바로잡곤 했다
조연호 / 이 많은 여름이 교환되려 한다
(조연호, 천문, 창비,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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