同僚愛/서윤후(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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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윤후 「피오르드의 연인」
아름다운 것을 그대로 두는 것이 어려웠다 개와 물푸레나무 울타리와 트랙터 발작과 키스…… 하염없는 것들의 견고한 사랑으로 이루어졌으니 종종 당신의 예외가 되고 싶었던 모양 고전 속 은유들로 설명되지 않는 것이다 우리를 아프게 하는 것은, 내일이 무표정으로 찾아오는 것은 당신의 단골손님처럼 살아간다는 것 불 끄면 푸줏간은 이토록 무서운 곳인데, 물컹 꼬리를 밟고 우는 것도 정작 나뿐인 곳에서 위험한 쪽을 내다보지 않는 우리의 아늑함을 애태우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당신의 서재에서 돌아오지 않는 당신을 기다리다 내가 숨길 것이 더 많아지는 일처럼 당신을 사랑한 이들이 두고 간 수많은 편지는 미응답 속에서 각자 품어온 열매를 베어 물게 했다 나는 나만 겨우 매달 수 있는 텅 빈 나무를 기르느..
2021.06.18 -
서윤후 「무한한 밤 홀로 미러볼 켜네」
티브이에 춤추고 노래하는 내가 나온다 생선을 바르다 말고 본다 이 무대를 끝으로 은퇴를 선언할 댄스 가수 얼굴을 애써 외면하지 않는다 술 취한 자들의 노래만큼 엉망이었지 흥얼거리다 사라질 이름인데 너무 오래 쓴 거야 도려주긴 그렇고 버리는 것이지 나도 잃어버린 것을 주워다 썼으니까 코러스 없이는 노래를 못해요 무반주는 아주 곤란해요 악보 볼 줄 몰라요 춤은 자신 있어 함성 질러주면 노래 열심히 안 해도 될 텐데 무거운 가발을 벗으면서 묻기를, 시작하는 게 두려워? 끝내는 건? 남겨진 질문에 흔들리는 귀걸이의 큐빅으로 대신 말한다 잘 모르겠어 모르는 게 많아 신비로울 줄 알았던 텅 빈 해골에 사람들은 찬사를 보내고 내장까지 꽉 찬 헛기침으로 구름을 걷고 내가 누군가의 기분이 될 수 있으리라 당신..
2021.06.18 -
서윤후 「시」
춥다는 건 곤경을 그리는 데 좋은 도구라서 많은 여름이 겨울처럼 그려졌고 우린 그곳에 우두커니 서 있었지 한여름의 지나치기 쉬운 묘사로 종종 생략되는 줄도 모르던 우리는 서윤후, 무한한 밤 홀로 미러볼 켜네, 문학동네, 2021
2021.06.18 -
서윤후 「누가 되는 슬픔」
슬픔에게서 재주가 늘어나는 것 같아 녹슨 대문 앞을 서성거리는 사람을 글썽거린다고 생각한 적 있었지 망설이던 말이 발을 절며 다가와 매일 낭떠러지에 있다고 나를 종용하고 이제 등에 몰두하자는 말을 했지 두 눈동자의 주름을 펼치며 바라보자고 했지 그러나 너무 많은 슬픔이 기성품이 되어 집에 돌아온다 누구나 붙잡고 말하게 되는 마른 헝겊이 모자란 세계로 출국하고 바닷바람 머금은 손수건을 선물하지 이 모르는 슬픔이 움직이는 이유를 잠깐 떠들고 싶다 비행운의 연기력처럼 포로의 잠꼬대를 닮은 위로만 해댔지 더이상 나눌 수 없는 슬픔은 등에 업고 가려고 해 그 끝이 어딘지 모르지만 헤맬수록 정확해지는 그 주소로 향하려고 해 슬픔의 묘기가 나를 흉내낸다 눈물을 훔치던 네가 어디까지 이야기..
2021.06.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