同僚愛/임승유(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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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승유 / 사실
임승유 / 사실 여기 영혼이 있어. 불쑥 그런 말을 해버렸다. 숙소를 떠난 지는 한참 되었다. 왜 그런 말을 하냐며 너는 울먹이고 여길 봐. 이렇게 빛나는 이게 영혼이 아니면 뭐겠니. 머릿속이 하얘지는데 이건 아니라며 너는 돌아가자고 한다. 마지막으로 누가 불을 끄고 나왔는지 기억이 안 난다. 노력해도 안 되는 일이 있다. 앞으로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야. 일어난 일을 따라 걷기로 한다. 멀리 불빛이 보이는 장면은 옛날이야기에 종종 나온다 한번 가면 못 나오는 거다. 알고 있었다. 임승유 / 사실 (임승유, 나는 겨울로 왔고 너는 여름에 있었다, 문학과지성사, 2020) https://www.instagram.com/donkgrine/
2020.12.29 -
임승유 / 결혼식
임승유 / 결혼식 버스에서 내려 이정표를 따라갔어. 나는 저 사람들이 다 나와 같은 방향인 줄 알았는데 정신 차려보니 어디 가고 없더라고. 이제부터 정신 차려야 할 때 나 누구한테 말하고 있는 거니. 나무를 보다가 나무가 멈춘 걸 알았다. 그래도 너한테 말하고 있어. 나무가 다시 갈 때는 간격이 있고 나는 무사히 도착했다. 딴 데 간 줄 알았던 사람들이 모두 여기에 모여 있더라고. 이제 너를 찾기만 하면 돼. 안녕하세요. 그동안 잘 지내셨죠. 인사를 하고 돌아다니다가 끝나버렸다. 우린 잘 지냈으면 좋겠다. 임승유 / 결혼식 (임승유, 나는 겨울로 왔고 너는 여름에 있었다, 문학과지성사, 2020) https://www.instagram.com/donkgrine/
2020.12.29 -
임승유 / 길고 긴 낮과 밤
임승유 / 길고 긴 낮과 밤 우리가 사과를 많이 먹던 그해 겨울에 너는 긴 복도를 걸어와 내 방문을 열고 사과 먹을래 물어보곤 했다 어느 날은 맛있는 걸로 먹을래 그냥 맛으로 먹을래 그러기에 네가 주고 싶은 것으로 아무거나 줘 말해버렸고 오래 후회했다 그날 사과에 대해, 우리가 갖게 된 여러 가지 사과의 맛과 종류에 대해, 다양한 표정과 억양으로 이야기를 나누었다면 뭔가 달라지지 않았을까 임승유 / 길고 긴 낮과 밤 (딩아돌하 2020.봄, 편집부, 정일품, 2020) https://www.instagram.com/donkgrine/
2020.04.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