同僚愛/조해주(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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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해주 「낭독회」
어두운 방에서 그가 책을 소리 내어 읽고 있었고 나는 눈을 감고 듣고 있었다. 촛불이 어둠을 낫게 할 수 있나요? 어둠은 견디고 있을 뿐이다. 촛불을 앞에 두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나는 그가 눈부셨다. 그는 고개를 천천히 옆으로 움직이며 왼쪽에서 오른쪽 페이지를 읽어나갔다. 우기를 견디는 나무가 다 뽑혀 나가지 않은 것을 일종의 움직임이라고 할 수 있다면, 우리를 견디는 어둠이 다 휩쓸려 나가지 않은 것을 언어라고 할 수도 있다. 아무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실은 엉키려는 습성을 가지고 있다. 풀어지지 않는 것. 나누어지지 않는 것. 손바닥과 손바닥이 겹치고 또 겹치다가 빈틈없이 메워지는 마음이 된다면 그것이 어둠이라고 할 수도 있다. 어둠 속에서 형태가 남아 있던 손이 몰래..
2022.01.17 -
조해주 「시먼딩」
눈앞을 지나가는 빛의 무리는 정말 오토바이일까 한 대의 오토바이가 푸르게 쌓아놓은 석과 더미를 무너뜨린다 천막 아래서 졸던 과일가게 주인이 놀라서 얼른 뛰어나오고 형체를 알아보기 어려운 덩어리들을 주워 담기 시작한다 이거 먹을 수 있는 건가 생각하면서 손가락 사이로 흐르는 과육 석과에서 나온 하얀 속이 여기저기 덮인 바닥 눈앞을 지나가는 것이 정말은 무엇인지 순식간에 지나가버리고 마는 그것을 멈춰 세우는 순간 사람 머리 따위는 한 번에 날아가버리겠구나 그는 그런 생각을 하며 젖은 손으로 머리를 긁적인다 부서진 석과는 부서지지 않은 석과와 함께 봉투에 가득 담겨있다 주인은 다시 자리에 앉아 부채질을 한다 부채가 몇 개인지 알 수 없도록 2021 시마당 봄호
2021.07.10 -
조해주 「기일」
가끔 나는 내가 걷고 있는 장면을 목격한다 불 꺼진 쇼윈도 속에서 나는 조금 놀란 표정 점집에서 십만 원 주고 결혼 날짜를 받아온 사람이나 금요일 새벽 천국에 대해 무서운 표정으로 이야기하는 목사를 바라보고 있으면 세상에 자연사는 없다는 생각이 든다 생일처럼 유일하고 소형 비행기처럼 삐뚤빼뚤한 내가 수없이 비상구를 벗어나려고 하는 것과 그 모든 것을 몰랐다는 듯 우연으로 꾸미려는 계획 또한 죽는 것도 실수할까 봐 걱정된다 오직 자연스러운 것은 부자연스러운 것이 부자연스럽지만은 않고 나는 결코 인간다운 걸음걸이로 걷지 않으며 하얗고 길게 펼쳐진 계단의 끝이 팡파레와 천사들의 노래는 아니라는 것이다 시험지 귀퉁이를 하나씩 찢었다 새가 없는 몸으로부터 떨어져 나온 깃털이 육교 위로 흩날렸..
2021.04.16 -
조해주 「다큐멘터리」
나는 달의 입체성을 믿지 않는다. 그것에게 옆모습이 있다고? 원숭이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유리 너머의 원숭이는 뾰족한 이빨을 드러내며 내게 바나나 껍질을 던진다. 원숭이의 자리에서 바라보면 유리에 비친 자신의 붉은 얼굴과 긴 코트를 입고 멀뚱히 서 있는 내 모습이 겹쳐 있다. 어쩌면 원숭이는 나를 자신의 영혼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악몽 같은 형상을 향해 먹을 수 있는 것과 먹을 수 없는 것. 원숭이에게 우리이고 내게는 화면인 것. 그것에 얼굴을 가져다 댄다. 유리는 너무 차가워서 눈을 감고 있으면 유리와 닿은 부분 말고는 모두 지워지는 기분이다. 원숭이의 공격성이 유리를 깨부술 수는 없을까. 원숭이는 내가 서 있는 곳이 바깥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고개를 돌리거나 등지고 앉지..
2021.04.16 -
조해주 「아는 사람」
다른 사람은 지루하다고 말하는 영화를 나는 좋아해, 그렇게 말할 때마다 기분이 좋다 다른 사람보다도 더 먼 사람이 된 것 같아서 아는 사람은 등 뒤에서 갑자기 나를 놀라게 할 수 있다 모르는 사람은 갑자기 해변이 되기도 하고 나는 아아, 하고 길게 아주 길게 눈앞에 서 있는 사람과 마주 선다 점심을 먹는 장면 속의 식당 주인을 바라보면서 언젠가 그 사람은 나의 선생님이었다는 걸 알게 된다 음악이었을까 아니면 국어였을까 닮은 사람이라는 건 전혀 다른 사람이라는 뜻이야 영화 속에서 나는 유창한 스페인어로 음식을 주문하면서 비로소 돌아왔어요, 반갑게 인사를 건넨다 그걸로 되겠니? 오랜만에 만난 선생님은 잘 웃는 사람이다 아는 사람은 조금씩 모르는 사람이 되어가고 나는 좀처럼 영화에..
2021.04.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