同僚愛/이현호(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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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호 「뜰힘」
새를 날게 하는 건 날개의 몸일까 새라는 이름일까 구름을 띄우는 게 구름이라는 이름의 부력이라면 나는 입술이 닳도록 네 이름을 하늘에 풀어놓겠지 여기서 가장 먼 별의 이름을 잠든 너의 귓속에 속삭이겠지 나는 너의 비행기 네 꿈속의 양떼구름 입술이 닳기 전에 입맞춤해줄래? 너의 입술일까 너라는 이름일까 잠자리채를 메고 밤하늘을 열기구처럼 솟아오르는 나에 대해 이현호, 라이터 좀 빌립시다, 문학동네, 2014
2021.07.05 -
이현호 「붙박이창」
그것은 투명한 눈꺼풀 안과 밖의 온도 차로 흐려진 창가에서 "무심은 마음을 잊었다는 뜻일까 외면한다는 걸까" 낙서를 하며 처음으로 마음의 생업을 관둘 때를 생각할 무렵 젖는다는 건 물든다는 뜻이고 물든다는 건 하나로 섞인다는 말이었다, 서리꽃처럼 녹아떨어질 그 말은. 널 종교로 삼고 싶어, 네 눈빛이 교리가 되고 입맞춤이 세례가 될 순 없을까 차라리 나는 애인이 나의 유일한 맹신이기를 바랐다 잠든 애인을 바라보는 묵도 속에는 가져본 적 없는 당신이란 말과 곰팡이 핀 천장의 야광별에 대한 미안함이 다 들어있었다 그럴 때 운명이란 점심에 애인이 끓인 콩나물국을 같이 먹고, 남은 한 국자에 밥을 말아 한밤에 홀로 먹는 일이었다. 거인의 눈동자가 이쪽을 들여다보는 듯 창밖은 깜깜, 보풀 인 옷깃 여미며 ..
2021.01.24 -
이현호 「성탄목」
그 겨울 살풋 맞잡은 손안엔 별이 살았다 우리는 하나의 소실점으로 멀어지는 세모꼴의 찻길을 육교 위에서 내려다보았다 헐벗은 가로수 나뭇가지들 사이로 어둠살에 갇힌 차량의 불빛들 반짝이고 희미한 바람에 실려 공중을 떠돌던 마른 눈송이들이 그 조감도를 맴돌 때 언젠가 저렇게 큰 크리스마스트리를 갖고 싶어 깍지 낀 손안의 별은 지구에서 가장 환한 성냥불 그 빛가로 애인의 머리가 함박눈같이 내려앉았다 우리는 서로의 맘속에 이 별이 다녀갈 만큼 큰 굴뚝을 지어주었다 꼬마전구들을 별무리처럼 휘감은 겨울나무가 계절을 잊고 꽃순을 피워올렸다 그것뿐이었던 그 겨울 너에게 이현호, 라이터 좀 빌립시다, 문학동네, 2014
2021.01.24 -
이현호 / 직유법
이현호 / 직유법 당신이 이쪽으로 걸어오자 저편 세상이 그림자처럼 어두워졌다 당신이 여기 있어 텅 비어버린 세계에 대해 비 맞는 벤치같이 나는 하릴없어서 늘 한 사람이 모자라는 세계 속으로 떠나보내 주었다 멀리 당신을 등대처럼 놓아주었다 아주 잊지는 않은 기분으로 내가 아니고서는 이해할 수 없는 마음이 물수제비같이 떠가는 것을 보며 저기 당신이 있어 이편 세상의 어둠 속에 파이는 등댓불의 환한 괄호마다 미아처럼 나는 하릴없이 직유를 던지며 놀았다 당신같이 당신처럼 당신인 듯이 이현호 / 직유법 (이현호, 아름다웠던 사람의 이름은 혼자, 문학동네, 2018) https://www.instagram.com/donkgrine/
2020.03.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