同僚愛/양안다(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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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안다 / 장미성운
양안다 / 장미성운 우리가 빛과 빛 사이에 놓여 있을 때 이곳이 어디인지 잠시 잊고 그 사실이 불편하지 않다면 너는 종소리를 들었다고 말한다 나는 부유하는 먼지를 바라보는데 우리의 일부가 끝없이 확산되는 시간 붉은 병이 깨지자 주변이 온통 꽃밭이었다 손목을 그으려고 했어, 그런 말을 쉽게 하게 되고 폭우 속에서 걷는 연인을 바라보며 그들의 대화를 상상해 보는 일 그러나 우리는 우리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그저 휩쓸리고 있다고 우리가 어둠 속에 놓여 있을 때 언젠가 들었던 예언을 떠올리며 서로를 미리 증오하고 너는 눈이 내린다고 말한다 나는 파도 소리를 듣고 있는데 풍선을 삼키고 그냥 터져 버렸으면 좋겠어 그때도 날 보러 와 줄래? 춥고 어둡다며 네가..
2020.11.29 -
양안다 / 이명
양안다 / 이명 밤이 되면 속을 게워내고 두 발이 녹고 네가 보였다 너는 환하게 웃고 있다 '날 사랑하니?' 너의 입모양이 보이는데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너는 너의 존재를 확인하려 자꾸 내게 물었다 너의 입술이 흐려지고 있었다 정신을 차리고 나면 한낮이었다 너는 사라지고 없는데 어디선가 너의 질문이 계속 들렸다 양안다 / 이명 (양안다, 백야의 소문으로 영원히, 민음사, 2018) https://www.instagram.com/donkgrine/
2020.11.29 -
양안다 / 진단
양안다 / 진단 토할 때까지 음식을 구겨 넣지 마세요, 술을 줄이세요, 담배를 피웁니까, 가족과는 화목하군요, 애인이 있습니까, 미래에 무엇을 하고 싶습니까, 어때요, 어렵진 않나요, 극단적인가요, 왜 죽고 싶습니까, ……모르겠다고 했어 죽고 싶은지 아닌지도 모르겠는데 이유를 말하라면 더 모르겠고 그걸 확인하려고 그곳에 갔었어 그날은 오래 걸었지 모르는 길을 걸으면 모르는 장소가 생기고 정서가 생기는데 어떤 이름이 붙여야 할까 넌 알아? 멀리 걸어서 먼 곳까지 갔다는 너는 정답을 알아? 나는 종종 공원에 앉아 바닥을 쪼는 새들이 날아오르길 기다린다 일제히 날아오르는 광경, 너와 함께 본다면 좋을 텐데 네가 내 손을 잡던 때를 기억한다 어깨를 감싸고 괜찮아 긴장하지 마, 그런 목소리가..
2020.11.29 -
양안다 / 안녕 그러나 천사는
양안다 / 안녕 그러나 천사는 언젠가 인간은 천사였던 적이 있지 않을까. 너의 날개 뼈를 만지면서. 폭약이 누군가의 마음을 뒤흔드는 새벽. 너는 붓을 적시며 말한다. 악마도, 이 세상의 조류도 모두 날개 뼈를 갖고 있다고. 종이가 되길 원한 나무는 너로 인해 하나의 그림이 되어가는 중인데. 어느 신화에 따르면 태양과 달을 신의 눈동자라 믿었다고 한다. 그러나 어느 짐승의 두 눈일지도. 전생에 우리는 꽃이었을지도 몰라. 나는 너의 머리칼을 쓸어 모으면서. 아니. 나는 물이었을 거야. 물을 만질 때마다 불안이 전부 씻겨 내려가거든. 폭약이 우리 불안을 뒤흔드는 새벽. 네가 그린 꽃은 호수에서 목을 적시고 있었다. 짐승의 등 위로 나뭇잎이 돋아나고. 인간은 누군가를 ..
2020.11.29 -
양안다 / 다큐멘터리
양안다 / 다큐멘터리 나는 꿈에 잠겨 있는데 너는 물속에서 나오지 않았다 애정과 증오가 반복되었다 너는 그것이 마음이라 했다 아무도 모르게 죽을 수 있는 곳을 찾고 싶었다 누구도 우리가 어긋났다고 말해 주지 않았다 몸을 구기고 마음을 자를 수 있다면 어디에 보관하는 게 좋을까 너는 투명하게 웃는다 미소가 옅어진다 속력을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너와 내가 같은 마음에 가담했다는 것이 무섭다 지난 꿈에서 너는 익사하고 있었다 너는 영혼이 무겁다고 했다 고요한 연못을 바라보는 중이었다 양안다 / 다큐멘터리 (양안다, 백야의 소문으로 영원히, 민음사, 2018) https://www.instagram.com/donkgrine/
2020.09.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