同僚愛/한강(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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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서시」
어느 날 운명이 찾아와 나에게 말을 붙이고 내가 네 운명이란다, 그동안 내가 마음에 들었니, 라고 묻는다면 나는 조용히 그를 끌어안고 오래 있을 거야. 눈물을 흘리게 될지, 마음이 한없이 고요해져 이제는 아무것도 더 필요하지 않다고 느끼게 될지는 잘 모르겠어. 당신, 가끔 당신을 느낀 적이 있었어, 라고 말하게 될까. 당신을 느끼지 못할 때에도 당신과 언제나 함께였다는 것을 알겠어, 라고. 아니, 말은 필요하지 않을 거야. 당신은 내가 말하지 않아도 모두 알고 있을 테니까. 내가 무엇을 사랑하고 무엇을 후회했는지 무엇을 돌이키려 헛되이 애쓰고 끝없이 집착했는지 매달리며 눈먼 걸인처럼 어루만지며 때로는 당신을 등지려고도 했는지 그러니까 당신이 어느 날 찾아와 마침내 얼굴을 보여줄 때 그 윤곽의 ..
2021.01.10 -
한강 / 거울 저편의 겨울 5
한강 / 거울 저편의 겨울 5 시계를 다시 맞추지 않아도 된다, 시차는 열두 시간 아침 여덟 시 덜덜덜 가방을 끌고 입원 가방도 퇴원 가방도 아닌 가방을 끌고 핏자국 없이 흉터도 없이 덜컥거리며 저녁의 뒷면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한강 / 거울 저편의 겨울 5 (한강,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 문학과지성사, 2013) https://www.instagram.com/donkgrine/
2020.03.04 -
한강 / 몇 개의 이야기 6
한강 / 몇 개의 이야기 6 어디 있니. 너에게 말을 붙이려고 왔어. 내 목소리 들리니. 인생 말고 마음, 마음을 걸려고 왔어. 저녁이 내릴 때마다 겨울의 나무들은 희고 시린 뼈들을 꼿꼿이 펴는 것처럼 보여. 알고 있니. 모든 가혹함은 오래 지속되기 때문에 가혹해. 한강 / 몇 개의 이야기 6 (한강,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 문학과지성사, 2013) https://www.instagram.com/donkgrine/
2020.02.28 -
한강 / 회복기의 노래
한강 / 회복기의 노래 이제 살아가는 일은 무엇일까 물으며 누워 있을 때 얼굴에 햇빛이 내린다 빛이 지나갈 때까지 눈을 감고 있었다 가만히 한강 / 회복기의 노래 (한강,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 문학과지성사, 2013) https://www.instagram.com/donkgrine/
2020.0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