同僚愛/유진목(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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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진목 「로스빙」
우리가 도착한 곳은 여러 채의 방갈로가 공중에 떠 있는 해안가였다. 방갈로는 기둥을 세워 공중에 띄우고 만조에 물에 잠기지 않도록 했다. 여기에 아버지가 살았어? 로스빙은 그렇다고 내게 알려주었다. 아버지는 오래전에 어린아이를 버린 적이 있다. 어린아이를 버리고 서울의 당구장에서 내기 당구를 쳤다. 어머니는 소파의 모서리를 뜯으며 게임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방갈로에는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모두가 가족처럼 보였고 모두가 아닌 것처럼 보였다. 비행기를 타고 오는 동안에 로스빙은 화물칸에 있으면서 무엇이 들었는지 알 수 없는 상자들 사이에 있었다. 그중에 로스빙이 가장 컸다. 방갈로에서 나온 여자에게 나는 아버지 사진을 보여주었다. 여자는 고개를 내젓고 사진을 물..
2022.01.20 -
유진목 「로스빙」
당시 우리집은 살구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었다. 걷기엔 멀고 자전거를 타기엔 알맞은 거리로 나는 매일 저녁 자전거를 타고 살구 킬로미터를 달려갔다. 로스빙은 자전거의 왼쪽과 오른쪽을 번갈아 달리면서 해가 지는 저녁을 돌아나와 함께 집으로 오곤 했다. 로스빙은 꿈에서 온 개였다. 그날 아침 잠에서 깨어났을 때 로스빙은 베개맡에 앞발을 세우고 앉아 나를 보고 있었다. 나는 현관에 등롱을 걸어 문간을 밝히고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는 중이었다. 아버지가 도착했을 때 어떠세요 아버지 마음에 드세요 하고 물었다. 아버지는 등롱이 아니었으면 못 찾았을 거라고 했다. 그러고는 더 말이 없었다. 나로서는 최선을 다한 것이었다. 아버지를 사랑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집에서 작별하고 싶었다. 달리 올 사람도 ..
2022.01.20 -
유진목 「만리」
그는 바다에 나갔다가 한참 키가 자라는 아이처럼 돌아오곤 했다. 분명한 나의 아이처럼 이제 더는 품을 수 없는 품에 안고 만질 수 없는 물에 오르자 장성한 사내가 되고 여기서 우리의 이야기는 잠시 멈춘다. 나는 젊은 여자의 몸으로 일어난다. 그는 숨을 참고 더 먼바다로 가고 싶다. 금방 돌아오겠다는 말을 하고서 우리는 오랫동안 살아왔다. 유진목, 작가의 탄생, 민음사, 2020
2021.01.13 -
유진목 「할린」
하루는 보다 못한 그가 궁금한 것이 있다면 할린에게 물어보라 했다. 할린은 죽은 자이지만 묻는 것에 대답하는 자이며 나는 그런 것을 믿지 않지만 믿기도 하여서 할린 그 이름을 기억해 두었다. 나는 내가 죽는 날을 알고 싶었다. 정확한 날짜와 시간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그날을 향해 살아가고 싶었다. 그런 것도 알 수 있어? 아마도? 나는 어떻게 죽는지 그 또한 알고 싶었다. 그런 게 왜 알고 싶어? 넌 알고 싶지 않아? 난 알고 싶지 않아 네가 알게 된 것을 내게는 말하지 않았으면 한다 내가 언제 죽는지 어떻게 죽는지 모르고 싶어? 모르고 싶어 너는 알고 싶은 게 없어? 나는 알고 싶은 게 없어 아는 것도 전부 잊었으면 좋겠어 나도? 가끔은 ..
2021.01.13 -
유진목 「미시령」
몇 개의 터널을 지나 아버지를 발견했을 때 아버지는 평생을 걸어 이곳에 온 것 같았다. 눈 덮인 도로에 다리를 끌며 아버지는 오늘 본 것을 아무에게도 말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한참을 찾고 한참을 기다렸는데 여기가 어딘지 언제인 것인지 아버지는 모르는 것 같았다. 방금 네 엄마를 묻었다 일찍 왔으면 너도 도왔을 것을 아버지는 곱은 손을 내밀어 헤드라이트에 스치는 눈발을 어루만졌다. 아버지 아버지 얼굴에 뭐가 묻었어요 나는 손을 뻗어 김이 서린 유리를 닦았다. 무엇이든 잊지 않으면 너도 나와 같이 되고 말 거다 아버지의 눈꺼풀은 얼어붙은 것처럼 떨어지지 않았다. 엄마가 계속 너에게 계속 연락한 것을 알고 있지 하지만 너는 혼자 생겨난 것처럼 살고 있더구나 아버지의..
2021.0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