同僚愛/정다연(3)
-
정다연 「월화수목금토일」
잘 지내? 누가 묻지도 않았는데 잘 지내 답하고 싶은 순간이 있습니다 오늘은 당신에 대해 참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당신이 좋아하던 음식을 올려놓고 기름기 묻은 손을 세제로 씻으며 물기를 닦던 사소한 습관과 벨을 누르면 가장 먼저 반겨주던 당신에 대해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던 음성에 대해 - 잘 지내고 있어? 벽장에 비치는 것이라곤 그림자 하나뿐인데 문득 묻고 싶은 순간이 있습니다 비를 모으고 모으다 못 견디고 무너지는 댐처럼 폭설에 쓰러지는 나무처럼 어떻게 지내 묻고 싶은 순간이 - 오늘은 당신에 대해 이야기를 참 많이 나누었습니다 당신이 좋아하지 않던 음식을 앞에 두고 왜 싫어했을까? 이렇게 먹기 좋은 것을 웃으면서 월화수목금토..
2021.11.07 -
정다연 「커트 피스」
흐린 날씨다 철교를 따라 걸으며 나는 스스로에게 건강하게 살고 싶다고 말한다 사랑하는 이의 죽음과 연이은 불행 찢기고 찢긴 삶은 고통이었지만 예술은 그만큼 아름다웠다는 이야기 용기로 삼고 싶지 않다 등에 한가득 짐을 진 사람이 저 앞을 걸어간다 오늘처럼 바람이 부는 날 뉴욕에서 쿠사마 야요이는 반품된 커다란 작품을 들고 40블록을 걸었다 어디서 네 작품을 볼 수 있니? 오랜만에 만난 이가 전하는 다정한 안부 시집은 구천원, 원한다면 인터넷에서 찾아볼 수도 있어 관람료는 없고 공짜야 말하고 길을 나서는 나보다 앞서간 사람이 시야에서 사라진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그가 계속해서 가고 있다는 믿음이 천천히 머리칼을 적신다 안개처럼 도시를 산책하던 아..
2021.11.07 -
정다연 「에코백」
카페에서 친구를 기다린다 커피향이 고소하다 불에 볶은 과테말라, 케냐, 오악사카산 원두 수익의 일부는 정당하게 현지에서 일하는 농부들에게 돌아간다 많이 살수록 할인율은 높아진다 최저가의 최저가 에코백은 덤이다 담배 있어요? 역 광장을 돌며 담배를 구걸하던 남자가 무료급식을 받기 위해 줄을 선다 보이지 않는 구석에, 그러나 너무도 쉽게 눈에 띄는 한국이 싫다며 외국을 전전하던 친구는 이제 세상에서 서울보다 좋은 곳은 없다고 한다 돈만 있다면 이렇게 편한 나라가 어딨어? 멕시코시티에서 총에 맞아 죽은 아이를 봤어 모르몬교 백인을 향한 증오범죄였는데 해변에서 먹었던 토르티야는 정말 매웠지 실컷 떠들다가 친구는 기념품으로 샀다는 핸드메이드 에코백을 건넨다 착한 소비는 가난한 ..
2021.11.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