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형도 / 성탄목 ― 겨울 판화 3

2020. 12. 27. 00:41同僚愛/기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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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형도 / 성탄목 ― 겨울 판화 3

크리스마스트리는 아름답다

그것뿐이다

오늘은 왜 자꾸만 기침이 날까

내 몸은 얼음으로 꽉 찬 모양이야

방 안이 너무 어두워

한 달 내내 숲에 눈이 퍼부었던

저 달력은 어찌나 참을성이 많았던지

바로 뒤의 바람벽을 자꾸 잊곤 했어

성냥불을 긋지 않으려 했는데

정말이야, 난 참으려 애썼어

어느새 작은 크리스마스트리가 되었네

그래, 고향에 가고 싶어

지금보다 훨씬 더 어렸지만

사과나무는 나를 사로잡았어

그 옆에 은박지 같은 예배당이 있었지

틀린 기억이어도 좋아

멀고먼 길 한가운데

알아? 얼음 가루 꽉 찬 바다야

이 작은 성냥불이 어떻게 견딜 수 있겠어

어머니는 나보고

소다 가루를 좀 먹으라셔

어디선가 통통 기타 소리가 들려

방금 문을 연 촛불 가게에 사람들이 몰려 있어

참, 그런데

오늘은 왜 아까부터

 

 

 

기형도 / 성탄목 ― 겨울 판화 3

(기형도, 입 속의 검은 잎, 문학과지성사, 1991)


https://www.instagram.com/donkgr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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