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일 「나는 모스크바에서 바뀌었다」
2021. 2. 20. 10:58ㆍ同僚愛/김승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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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무서운 것이 너무 많고
비위도 약하지만
내가 시체 청소부면 좋겠다
초등학교 앞에 시체가 나타나면 아이들이 떼로 몰려서 시체를 둘러싸고 서서 그걸 보고 있다
한마디씩 하는 애들도 있고 아닌 애들도 있지
애들도 시체를 봐야 시체가 어떤 것인지 알겠지만 나는 시체가 너무 불쌍해서 시체를 들고 먼 곳으로 간다
아무도 보고 수군거리거나
침묵하지 않도록
그때 나는 아직 어린아이고 시체는 대부분
축축하고 무겁다
나는 내가 애면 좋겠다
천만 명이면 좋겠다
어린애들이 있는 곳이면 거기 항상 있는
시체가 나타나면 들고 먼 곳으로 가는
모스크바 공항에서 파리행 비행기를 놓치고
공항에 오랫동안 갇혀서
이런 개고생 좀 그만하려고 나이가 든 만큼 현명해지려고 했던 것 같은데
집에만 있으려고 했던 것 같은데 싫은 사람 나쁜 사람
처음부터 잘 솎아내고 살려고 했던 것 같은데
그렇게 살지 말아야지
전염병도 도는 시기에
누울 곳이 없는 모스크바에서
그렇게 살지 말아야지 내가 초등학생이면 좋겠다
천만 명이면 좋겠다
시체를 둘러싼 아이들 틈바구니를 비집고
들어가서 시체를 들고 먼 곳으로
그런 생각만 스무 시간 하고
나는 모스크바 공항에서 바뀌었다
권민경 외, 그대 고양이는 다정할게요, 아침달,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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