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수우 「베란다 숲 기억」
2022. 1. 14. 13:22ㆍ同僚愛/남수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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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두 번 다시 돌아오지 말란 말은 썩 괜찮았다
단추는 빛나다 사라지고
내게는 빈 들판이 남았다
그곳에서 내 뒤를 밟으며
사냥감들은 여러 날을 살았다고 한다
빈손을 보고도 말이 없던 마망
숲을 흔들며
쌀뜨물 같은 안개를 흘려보내던 마망은
어느 날 자신의 녹슨 총구를 닦고 있었다
그날 마망이 겨눈 사냥감들이
새벽 내도록 내 발 앞에 척척 쌓여만 갔다
2
내가 태어날 때 마망은 울고 있었다
그날 움켜쥔 소맷자락이 손금으로 남았는데
어린 내가
어린 숲에서 주워온 것들을 하나씩 펼쳐 보였다 마망,
여기 반작이는 것들을 봐요
마망은 차갑게 식은 총구를 고쳐 매며
네가 어른이 되어서도 이 숲은 자라야겠구나
내가 다 자라 숲을 떠맡았을 때
마망은 노을을 끌고 맴을 돌던 기억이었다
3
여기 내 빈손을 좀 봐요
이제 이곳은 나 혼자 말하고 나 혼자 태어나는 그늘
잠자는 녹색 그림자
죽은 가지를 매달고 달리는 이파리들이
두 손을 펼쳐도 드릴 게 없네요
밤에는 양털 언덕을 이마 끝까지 끌어 덮었다
4
단추를 채우던 내가
공터를 늘리는 동안에도 나무는 서서히 죽는다
들판을 가로지른 검은 새들이
숲으로 뛰어들어 날개를 버리고
날갯짓을 버리고
꽃대처럼 흔들리면
총소리는 오래오래 들리지 않았습니다
빈 가지에 걸터앉아 내가 말했다
2021 문장웹진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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