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혜빈 「밤의 팔레트」
2022. 4. 20. 16:33ㆍ同僚愛/강혜빈
728x90
노랑과 옐로는 언니였다가 누나였다가
원피스를 바꿔 입다가 넘어지기도 하지
그런 언니는 이미 샀는데
그런 누나는 이미 옷장에
물방울무늬야 착하지
동그라미는 동그라미인 척도 잘하지
무지개보다 레인보우에 가깝다는 이야기
만져보면 비슷할 수도 있어
견딜 수 없는 색깔을 골라보자
수염 난 축구공이 굴러간다
보건실에서 몰래 기다리는 짝꿍
남자애들이 웃으며 뺑뺑이를 타는 동안
지그재그 반복되는 재채기
생일에는 가족사진을 다시 그릴 수밖에
아무도 귀가 없어서 다행이야
노랑과 옐로는 너무 많은 밤을 오렸다
성별이 다른 별을 꿰매는 건 위험해
우리는 틀린그림찾기처럼 조금만 달랐는데
왜 아들은 두 글자일까
살아 있는 물방울들은 방금 다 외웠어
나와 언니를 섞으면 하얗게 된다
나에게 누나를 바르면 까맣게 된다
내가 나를 동그랗게 벗고 굴러간다

강혜빈, 밤의 팔레트, 문학과지성사, 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