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솔아 / 모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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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솔아 / 모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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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내가 수두룩했다

스팸 메일을 끝까지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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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간 아래 악착같이 매달려 있는

물방울을 끝까지 지켜보았다

떨어지라고 응원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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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키우는 담쟁이에 몇 개의 잎이 있는지

처음으로 세어보았다 담쟁이를 따라 숫자가 뒤엉켰고 나는

속고 있는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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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래는 숨은 아이를 궁금해하고

숨은 아니는 술래를 궁금해했지 나는

궁금함을 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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깁스에 적어주는 낙서들처럼

아픔은 문장에게 인기가 좋았다

오늘은 세상에 없는 국가의 국기를 그렸다

그걸 나만 그릴 수 있다는 게 자랑스러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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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거벗은 돼지 인형에게 양말을 벗어 신겼다

돼지에 비해 나는 두 발이 부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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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딩 꼭대기에서 깜빡거리는 빨간 점을

마주 보면 눈을 깜빡이게 된다

깜빡이고 있다는 걸 잊는 방법을 잊어버려

어쩔 줄 모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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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내가 무수했다

나를 모래처럼 수북하게 쌓아두고 끝까지 세어보았다

혼자가 아니라는 말은 얼마나 오래 혼자였던 것일까

 

 

 

임솔아 / 모래

(임솔아, 괴괴한 날씨와 착한 사람들, 문학과지성사,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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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instagram.com/donkgr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