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보원(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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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보원 「현실적인 잠」
당신의 잠이 내게로 왔다 물웅덩이가 없는 아스팔트 도로를 걸어서 이유를 몰라서 괜찮은 일들이 자꾸 일어난다 당신의 잠은 치와와처럼 짖는 밤으로부터 멀어지려고 꿈을 다 썼다 풀 냄새를 맡으러 간다고 쓰인 쪽지가 있다 당신은 차가운 물을 단숨에 마시지 못한다 당신은 마카롱을 오래 물고 있다 생각을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그만하고 싶다 그게 아무래도 멈추지 않았기 때문에 철새들이 방향을 바꾸고 하늘이 빈다 그 밑에서 나는 항상 더 밑으로 가려는 습성이 있다 지하실에선 작은 소리도 크게 들린다 작은 동물이 더 재빠르고 무서워진다 당신의 잠은 자꾸 내게로 온다 당신이 당신의 잠 앞에서 머뭇거리기 때문에 당신이 혼자 글을 쓰고 그것을 혼자 읽기 때문에 나는 소스라치고 그 소스라침을 사랑으로 이해하려고 무던히 애를..
2021.09.03 -
강보원 「저택 관리인」
마루야, 하고 나는 마루를 불렀는데 방 안에 있던 푸들들이 다 우르르 달려오는 거야 백 한 마리나 되는 이 푸들들의 이름을 다 마루라고 한다면 겹치는 걸까? 겹치면 더 좋겠지…… 나는 구분 가지 않는 것들을 사랑해 그 불가능성이 그 푸들들을 전부 다 사랑하게 만들었지 어쩔 수가 없어서 다 사랑할 수밖에 없었던 거야 그렇게 나는 푸들들에 둘러싸여서 산더미 같은 개밥 포대를 뒤적거리며 살고 있어 하지만 가끔은 나는 몸이 하나인데 푸들들은 너무 많다, 너무…… 너무 깜짝 놀라서 울고 싶어지는 거야 이렇게 멍멍 멍멍, 하고 강보원, 완벽한 개업 축하 시, 민음사, 2021
2021.09.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