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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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니 /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를 모르고
이제니 /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를 모르고 매일매일 슬픈 것을 본다. 매일매일 얼굴을 씻는다. 모르는 사이 피어나는 꽃. 나는 꽃을 모르고 꽃도 나를 모르겠지. 우리는 우리만의 입술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우리만의 눈동자를 가지고 있다. 모르는 사이 사라지는 꽃. 꽃들은 자꾸만 바닥으로 떨어졌다. 사물이 거울에 보이는 것보다 가까이 있습니다. 그 거리에서 너는 희미하게 서 있었다. 감정이 있는 무언가가 될 때까지. 굳건함이란 움직이지 않는다는 말인가.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은 오래오래 믿는다는 뜻인가. 꽃이 있던 자리에는 무성한 녹색의 잎. 녹색의 잎이 사라지면 녹색의 빈 가지가. 잊는다는 것은 잃는다는 것인가. 잃는다는 것은 원래 자리로 되돌려준다는 것인가. 흙으로 돌아가듯 잿빛에 기대어 섰을 ..
2020.11.16 -
이원하 / 아무리 기다려도 겨울만 온다
이원하 / 아무리 기다려도 겨울만 온다 복잡한 부분을 긁어보았지만 여전히 복잡해요 나중이 되면 볼품 있을 건데 지금은 마당에 널린 잔가지나 다름없어요 봄 여름 가을을 잔뜩 공들였는데 이게 웬 겨울인가요 산뜻한 걸 기대했는데 입 비뚤어진 겨울이라니요 엄살에도 쉽게 따뜻해지지 않아요 구석에서 더 구석으로 자릴 옮겨도 차가운 구석뿐이에요 삼 년 버틴 겨울이지만 아직 인사 나누는 사이 아니에요 남들은 말하죠 소복하게 쌓인 백지 위를 걷고 넘어지는 것이 얼마나 괜찮냐고 전 괜찮지 않아요 거짓말로는 녹지 않으니까요 이원하 / 아무리 기다려도 겨울만 온다 (편집부, 시인동네 1월호, 시인동네, 2019) https://www.instagram.com/donkgrine/
2020.03.02 -
송종규 / 벤자민을 위하여
송종규 / 벤자민을 위하여 너는 그냥 꽃, 너는 그냥 글씨 너는 그냥 눈물, 너는 그냥 사마귀 모든 상식과 사건과 사실들을 의심하는 일은, 벤자민이 세상을 건너는 하나의 방식 너는 그냥 빗물, 너는 그냥 포오크 너는 그냥 계단, 너는 그냥 빛 벤자민은 이십구 층에 있다, 이십구 층은 아득한 섬 슬프다, 라고 말하는 것은 진부하지만 그립다, 라고 말하는 것은 신파 같지만 그립고도 슬픈 섬, 너는 그냥 햇빛, 그냥 의자 그냥 거짓말 너는 그냥, 아득한 세월 송종규 / 벤자민을 위하여 (송종규, 공중을 들어 올리는 하나의 방식, 민음사, 2015) https://www.instagram.com/donkgrine/
2020.03.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