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4)
-
서윤후 「시」
춥다는 건 곤경을 그리는 데 좋은 도구라서 많은 여름이 겨울처럼 그려졌고 우린 그곳에 우두커니 서 있었지 한여름의 지나치기 쉬운 묘사로 종종 생략되는 줄도 모르던 우리는 서윤후, 무한한 밤 홀로 미러볼 켜네, 문학동네, 2021
2021.06.18 -
유이우 / 성장
유이우 / 성장 게으름을 안심시키고 게으름을 두드릴 거야 공기가 나뉘면 어른 아이 천재처럼 말하기 지문을 좋아하는 찰흙은 박수 칠 수 없어 날개처럼 앉아 있을 수밖에 그러니 수동으로 봄이 크게 하품한다 너의 손장난도 이제 잠이 들고 칭찬에 갇혀 있던 모든 겨울 종료. 모든 겨울 종료. 유이우 / 성장 (유이우, 내가 정말이라면, 창비, 2019) https://www.instagram.com/donkgrine/
2020.09.11 -
안현미 / 홈스쿨링 소녀
안현미 / 홈스쿨링 소녀 소녀는 비행기를 타고 왔다고 했다 고문받는 꿈을 꾸다 착륙했다고 했다 그 꿈은 몇번째 생의 5교시였을까, 생각했다고 했다 오늘 내게선 과학실 비커에 담긴 알코올 냄새가 난다 비극적인 냄새가 난다, 고 혼잣말로 중얼거리다 혼자 놀란다 안녕, 하고 당신은 서울역 앞에서 손을 흔들었지 우리는 오랜 역사가 먼지처럼 쌓인 다방에 앉았지 나는 그때도 사무원이었어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는 이야기 이렇게도 해보는 거지 누군가는 도착하고 누군가는 떠나고 우리는 쌍화차를 마셨었나? 당신은 남반구에 다녀올게, 라고 말했지 다음 생에 다녀올게, 라고 말하는 것처럼 심상하게 나는 당신을 한 계절은 의심하고 한 계절은 원망하고 한 계절은 욕하고 한 계절은 술을 따라주었지 누가 만든 ..
2020.04.03 -
나희덕 / 빨래는 얼면서 마르고 있다
나희덕 / 빨래는 얼면서 마르고 있다 이를테면, 고드름 달고 빳빳하게 벌서고 있는 겨울 빨래라든가 달무리진 밤하늘에 희미한 별들, 그것이 어느 세월에 마를 것이냐고 또 언제나 반짝일 수 있는 것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대답하겠습니다. 빨래는 얼면서 마르고 있다고, 희미하지만 끝내 꺼지지 않는 게 세상엔 얼마나 많으냐고 말입니다. 상처를 터뜨리면서 단단해지는 손등이며 얼어붙은 나무껍질이며 거기에 마음 끝을 부비고 살면 좋겠다고, 아니면 겨울 빨래에 작은 고기 한 마리로 깃들여 살다가 그것이 마르는 날 나는 아주 없어져도 좋겠다고 말입니다 나희덕 / 빨래는 얼면서 마르고 있다 (나희덕, 그 말이 잎을 물들였다, 창작과비평사, 1994) https://www.instagram.com/donkgrine/
2020.0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