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세미 / 피규어
박세미 / 피규어 옆으로 돌아눕곤 했다 누워서 보면 책장들은 모두 기울어져 있는데 왜 책들은 쏟아지지 않지 어린 손에 들린 저 장난감만큼 작아졌으면, 기도하는 중에 방은 지평선을 가진다 작아지거든 선명해지거든 독촉장을 읽지 않아도 친구를 찾지 않아도 돼 이 세상에 하나뿐인 존귀한 존재는 되지 않아야겠다 공장에서 태어나자 일정한 치수의 발을 가지고 간결한 가격표를 달면 이제 아무데서나 엎어져 있어도 상관없지 완벽한 자세와 날마다 똑같은 기분으로 더이상 눈을 깜박이지 않는다 경험 많은 늙은 손이 나를 집어드네 꺾어진 관절들이 곧게 펴 상자 속에 눕히면 뚜껑이 덮힌다 옆으로 돌아누웠다 박세미 / 피규어 (박세미, 내가 나일 확률, 문학동네, 2019) https://www.in..
2020.03.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