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희덕 / 식물적인 죽음 ― 故 김태정 시인을 생각하며
나희덕 / 식물적인 죽음 ― 故 김태정 시인을 생각하며 창으로 빛이 들면 눈동자는 굴광성 식물처럼 감응했다 그녀의 얼굴에서 빛이 희미해져갈 때마다 숨소리는 견딜 수 없이 가빠졌다 삶의 수면 위로 뻐끔거리는 일, 병실에는 그녀가 광합성으로 토해놓은 산소들이 투명한 공기방울이 되어 떠다녔다 식물에 가까워지고 있는지 공기 방울에서는 수레국화 비슷한 냄새가 났다 천천히 시들어가던 그녀가 침대 시트의 문양처럼 움직이지 않게 되었을 때 빛을 향해 열렸던 눈과 귀가 닫힌 문처럼 고요해졌을 때 이제 남자도 여자도 아닌, 사람도 사물도 아닌, 그 누구도 아닌, 오로지 한 떨기 죽음으로 완성된 그녀 죽음이 투명해질 때까지 죽음을 길들이느라 남은 힘을 다 써버린 사람 모든 발걸음이 멈추고 멀..
2020.03.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