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고기(5)
-
최지인 / 죄책감
최지인 / 죄책감 너와 손잡고 누워 있을 때 나는 창문에서 뛰어내리는 한 사람을 떠올렸다 이 세계의 끝은 어디일까 수면 위로 물고기가 뛰어올랐다 빛바랜 벽지를 뜯어내면 더 빛바랜 벽지가 있었다 선미船尾에 선 네가 사라질까 봐 두 손을 크게 흔들었다 컹컹 짖는 개를 잠들 때까지 쓰다듬고 종이 상자에서 곰팡이 핀 귤을 골라내며 나는 나를 미워하지 않는다 기도했었다 고요했다 태풍이 온다던데 아무런 진전이 없었다 최지인 / 죄책감 (창작동인 뿔, 한 줄도 너를 잊지 못했다, 아침달, 2019) https://www.instagram.com/donkgrine/
2020.11.18 -
이성미 / 청춘
이성미 / 청춘 파란 단풍 파란 은행 그늘에 앉아 불안한 잡담 차례를 기다리는 뜯지 않은 시멘트 포대처럼 땡볕 아래에는 상한 물고기들 이성미 / 청춘 (이성미, 너무 오래 머물렀을 때, 문학과지성사, 2005) https://www.instagram.com/donkgrine/
2020.08.13 -
김중일 / 기념일
김중일 / 기념일 우리가 함께 매일매일 무수히 구부렸던 숫자들을 모두 도로 감쪽같이 펴놓아야지 물고기처럼 평생 물거품과 키스해야지 김중일 / 기념일 (김중일, 아무튼 씨 미안해요, 창비, 2012) https://www.instagram.com/donkgrine/
2020.06.16 -
전윤호 / 수몰지구
전윤호 / 수몰지구 자꾸 네게 흐르는 마음을 깨닫고 서둘러 댐을 쌓았다 툭하면 담을 넘는 만용으로 피해주기 싫었다 막힌 난 수몰지구다 불기 없는 아궁이엔 물고기가 드나들고 젖은 책들은 수초가 된다 나는 그냥 오석처럼 가라앉아 네 생각에 잠기고 싶었다 하지만 예고 없이 태풍은 오고 소나기 내리고 흘러 넘치는 미련을 이기지 못 해 수문을 연다 콸콸 쏟아지는 물살에 수차가 돌고 나는 충전된다 인내심에 과부하가 걸리지 않기를 꽃 피는 너의 마당이 잠기지 않기를 전화기를 끄고 숨을 참는다 때를 놓친 사랑은 재난일 뿐이다 전윤호 / 수몰지구 (전윤호, 세상의 모든 연애, 파란, 2019) https://www.instagram.com/donkgrine/
2020.03.02 -
하재연 / 양양
하재연 / 양양 물고기를 잡아야 돌아갈 수 있다고 했다. 네 손바닥에 놓인 것이 조용했다. 해마도 물고기냐고 물었다. 해마는 말을 닮은 물고기라고 했다. 눈 뜬 해마는 식물 같아, 수컷이 새끼를 낳는다지. 너는 해마가 약으로도 쓰인다고 멸종 위기라고 물에 사는 고기들이 다 고기인 건 아니라고. 다음 날이 도착했는데 죽은 해마와 나는 사람이 먹어야만 산다는 것에 대해 생각했다. 하재연 / 양양 (하재연, 우주적인 안녕, 문학과지성사, 2019) https://www.instagram.com/donkgrine/
2020.0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