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현미 「낡은 곰 인형」
간밤에 내린 비 온 숲이 말간 얼굴이다 수많은 유리창들 퍼즐 한 조각씩 품에 안고 아침을 여는 대학병원 몸 한구석에 달린 맹장처럼 지하 1층 한 구석에 자리한 '핵의학과' 스르르 로비의 문이 열리며 눈만 반짝이는 외계인들이 들어온다 두리번거리며 자리를 찾아 앉는 눈들 한 편의 무성영화가 지나간다, 조용하다. 소리 없이 스쳐지나가는 휠체어 아주 작고 가는 팔 안에 꼭 안겨 있는 낡고 낡은 곰 인형 갈색 벙거지를 눌러쓴 무심한 눈이 내 시선을 사로잡는다 알 수 없는 막막한 슬픔이 가슴 속 깊이 밀물처럼 밀려오고 예고 없이 물안개가 자욱해진 눈으로 소녀의 뒷모습을 배웅한다 저 작고 가냘픈 어린 외계인은 어느 별에서 왔을까 두 손을 모은다 2020 시마당 가을호
2021.0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