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우(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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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우 / 건망증
박성우 / 건망증 깜박 나를 잊고 출근버스에 올랐다 어리둥절해진 몸은 차에서 내려 곧장 집으로 달려갔다 방문 밀치고 들어가 두리번두리번 챙겨가지 못한 나를 찾아보았다 화장실과 장롱 안까지 샅샅이 뒤져 보았지만 집안 그 어디에도 나는 없었다 몇 장의 팬티와 옷가지가 가방 가득 들어 있는 걸로 봐서 나는 그새 어디인가로 황급히 도망친 게 분명했다 그렇게 쉬고 싶어하던 나에게 잠시 미안한 생각이 앞섰지만 몸은 지각 출근을 서둘러야 했다 점심엔 짜장면을 먹다 남겼고 오후엔 잠이 몰려와 자울자울 졸았다 퇴근할 무렵 비가 내렸다 내가 없는 몸은 우산을 찾지 않았고 순대국밥집에 들러 소주를 들이켰다 서너 잔의 술에도 내가 없는 몸은 너무 가벼워서인지 무거워서인지 자꾸 균형을 잃었다 금연하면 건강해지고 장수..
2020.03.02 -
박성우 / 목도리
박성우 / 목도리 뜨개질 목도리를 하고 가만히 앉아 있으면 왠지 애인이 등 뒤에서 내 목을 감아올 것만 같아 생각이 깊어지면,애인은 어느새 내 등을 안고 있다 가늘고 긴 팔을 뻗어 내 목을 감고는 얼굴을 비벼온다 사랑해, 가늘고 낮은 목소리로 귓불에 입김을 불어넣어온다 그러면 나는 그녀가 졸린 눈을 비비며 뜨개질했을 밤들을 생각한다 일터에서 몰래 뜨다가 걸려 혼줄이 났다는 말을 떠올리며 뭐 하러 그렇게까지 해 그냥 하나 사면 될걸 가지구,라고 나는 혼잣말을 한다 그러다가는 내 목에 감겨 있는 목도리는 헤어진 그녀가 내게 마지막으로 선물한 것이라는 것에서 생각을 멈춘다 애인도 손을 풀고는 사라진다 박성우 / 목도리 (박성우, 가뜬한 잠, 창비, 2019) https://www.instagram...
2020.02.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