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시하 / 카사 로사*
박시하 / 카사 로사* 사물은 언젠가 자기를 다 비운다. 빈 로션 통을 흔든다. 써버린 것들은 어디로 갔을까. 나는 나를 반쯤 비웠다. 지나간 나는 장밋빛 꿈을 얼굴에 바른다. 잊은 거리를 걷고 있지. 뒤도 안 돌아보고 뒤로 가고 있지. 누군가 살던 집에 비우지 못한 말들이 산다. 숲은 어떻게 자기를 비우면서 채워지나요. 묻지 말아야 할 것을 물으며 나무의 끝을 올려다본다. 더는 할말이 없는 로션 통이 가득 비어 있다. 박시하 / 카사 로사* * Cassa Rossa. 헤르만 헤세가 살던 집. (박시하, 우리의 대화는 이런 것입니다, 문학동네, 2016) https://www.instagram.com/donkgrine/
2020.07.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