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경(2)
-
석지연 / 우리가 네가 아니었을 때
석지연 / 우리가 네가 아니었을 때 비는 약속 없이 오기로 한다 심장박동처럼 폭우가 쏟아지자 처음으로 나는 안녕을 묻는다 그곳의 여름은 마음에 드니? 나는 네 이름을 마주하기 위해 내 슬픔을 소모할 거야 새를 추방하는 나뭇가지를 이야기할 때 네가 앉아 있는 곳은 뒤바뀐 나의 배경이다 꽃잎은 오래 젖어 차창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그 안에 한때 우리가 있었는데 우산들이 한꺼번에 펴지자 너는 보이지 않는다 내 왼편 어깨 위 빗방울은 네 오른편 어깨의 자국과 같은 것 심장은 멈추지 않고 우산은 매일 챙기기로 한다 이곳의 여름은 네가 부재하므로 써진다 너는 안다 우리를 지우고 나서야 비로소 내가 남는다는 것을 석지연 / 우리가 네가 아니었을 때 (편집부, 시와 미학 가을호, 가림토, 2013) h..
2020.03.02 -
이장욱 / 피사체
이장욱 / 피사체 우리는 고정되었다. 우리는 분별없이 떠들다가 김치, 라고 외치는 순간 하나의 점으로 수렴되었다. 우리는 책임감이 점점 강해졌다. 미래를 위해 모든 것을 하기로 했다. 우리의 배경에서 떨어지는 빗방울과 함께, 웃고 있는 남자는 웃지 않은 여자를 사랑했지. 갈색 구두를 신고 있는 사람이 곧 죽었어. 둘째 줄의 콧수염이 문상을 갔네. 또각또각, 하이힐을 신은 여자가 모퉁이를 돌아 사라지는 동안, 그녀의 선언에서 깨어나지 못한 건 모자를 쓴 남자. 그는 돌이킬 수 없는 것을 돌이키는 중. 당신이 이쪽 세계를 바라보는 순간, 아, 거기! 뒤에 가려진 사람! 얼굴이 안보여. 당신의 이야기도. 터지는 기침을 막으려고 당신은 얼굴을 찌푸렸다. 김치! 라고 외치며 우리가 일제히 정면을 바라보..
2020.0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