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설야 / 은하카바레
이설야 / 은하카바레 은하카바레 뒷문에서 아버지가 나왔다 나는 여인숙 난간에 기대어 책을 읽고 있었다 아버지는 슬픔을 달래느라 카바레에다 밤을 억지로 구겨넣었던 것 거미줄로 목을 감은 전봇대 불빛을 모으느라 눈이 캄캄해지는 밤 아버지는 불빛을 여기저기 붙이고 있었다 그 불빛에 찔려 오랫동안 아무것도 똑바로 쳐다볼 수 없었다 백구두 소리가 부엌문을 열면 내 몸 어딘가 구멍이 숭숭 뚫려 쏟아질 것만 같아 나는 해바라기 씨앗처럼 불어나는 새까만 음악 속으로 자꾸만 숨어 들어갔다 그 속에는 슬픔을 북북 찢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한계단 한계단 내려가면 깊은 연못이 연못 속에는 나와 얼굴이 같은 소녀들이 수장되어 있었다 이설야 / 은하카바레 (이설야, 우리는 좀더 어두워지기로 했네, 창비, 20..
2020.1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