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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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주희 / 확장되는 백야
고주희 / 확장되는 백야 펑펑 울고 나면 어디든 갈 수 있다 창밖에 없는 것들을 믿었다면 더 멀리 갈 수도 있었겠지 어떤 것은 오래됐고 어떤 것은 새것이었다 한쪽 눈을 감으면 다른 빛이 열리는 것처럼 견딜 수 없는 낮과 밤이 구겨진 백지로 버려지는 아침 참았던 분노는 왜 아이가 어질러 놓은 방바닥에서 시작되는가 두 눈을 껌뻑이며 너는 왜 색연필을 뒤로 감추는가 색종이 조각을 줍는가 능숙하게 화를 받아 내고 비 맞은 개처럼 정물화처럼 죄송하다는 표정으로 서 있는가 반복되는 용서 앞에서 얼마나 더 무참해질 수 있는가 잠이 들면 나를 제외한 몸들이 밝아 오는 희고 깨끗한 자작나무로의 먼 길 고주희 / 확장되는 백야 (고주희, 우리가 견딘 모든 것들이 사랑이라면, ..
2020.08.11 -
이원하 / 아무리 기다려도 겨울만 온다
이원하 / 아무리 기다려도 겨울만 온다 복잡한 부분을 긁어보았지만 여전히 복잡해요 나중이 되면 볼품 있을 건데 지금은 마당에 널린 잔가지나 다름없어요 봄 여름 가을을 잔뜩 공들였는데 이게 웬 겨울인가요 산뜻한 걸 기대했는데 입 비뚤어진 겨울이라니요 엄살에도 쉽게 따뜻해지지 않아요 구석에서 더 구석으로 자릴 옮겨도 차가운 구석뿐이에요 삼 년 버틴 겨울이지만 아직 인사 나누는 사이 아니에요 남들은 말하죠 소복하게 쌓인 백지 위를 걷고 넘어지는 것이 얼마나 괜찮냐고 전 괜찮지 않아요 거짓말로는 녹지 않으니까요 이원하 / 아무리 기다려도 겨울만 온다 (편집부, 시인동네 1월호, 시인동네, 2019) https://www.instagram.com/donkgrine/
2020.03.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