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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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윤석 / 밤의 질량
성윤석 / 밤의 질량 밤은 조금 부족한 듯했다. 별들이 떠 있기에는, 이 해안 도시는 너무 작았다. 나는 월요일에만 얘기했고 당신은 화요일만 내밀었다. 역시 밤은 부족했다. 당신과 내가 모두의 슬픔에 고리 모양의 구조를 달 여백이 없었다. 밤이 다시 조금 사라진 듯했다. 없어지는 게 당신의 숨결인지, 공기인지 알 수 없었다. 안기기에는 턱없이 모자란 밤의 치마에는 당신의 페이지를 표시할 수 없었다. 슬픔을 방 두 개에 다 채워 넣고 나와 걸었다. 숨고 싶은 슬픔의 치마들은 왜 그리도 많은지. 밤의 함몰 흉터들을 나는 오래 걷고 있었다. 밤은 다시 조금 부족한 듯했다. 한 장 검은 봉지 같은 밤이었다고 말했다. 성윤석 / 밤의 질량 (성윤석, 밤의 화학식, 중앙북스, 2016) https://w..
2020.07.30 -
라이너 쿤체(Reiner Kunze) / 두 사람
라이너 쿤체(Reiner Kunze) / 두 사람 두 사람이 노를 젓는다. 한 척의 배를. 한 사람은 별을 알고 한 사람은 폭풍을 안다 한 사람은 별을 통과해 배를 안내하고 한 사람은 폭풍을 통과해 배를 안내한다. 마침내 끝에 이르렀을 때 기억 속 바다는 언제나 파란색이리라. 라이너 쿤체(Reiner Kunze) / 두 사람 (류시화, 시로 납치하다, 더숲, 2018) https://www.instagram.com/donkgrine/
2020.07.02 -
도종환 / 스물몇살의 겨울
도종환 / 스물몇살의 겨울 나는 바람이 좋다고 했고 너는 에디뜨 삐아프가 좋다고 했다 나는 억새가 부들부들 떨고 있는 늦가을 강가로 가자고 했고 너는 바이올린 소리 옆에 있자고 했다 비루하고 저주받은 내 운명 때문에 밤은 깊어가고 너는 그 어둠을 목도리처럼 칭칭 감고 내 그림자 옆에 붙어 서 있었다 너는 카바이드 불빛 아래 불행한 가계를 내려놓고 싶어 했고 나는 독한 술을 마셨다 너는 올해도 또 낙엽이 진다고 했고 나는 밤하늘의 별을 발로 걷어찼다 이렇게 될 줄 알면서 너는 왜 나를 만났던 것일까 이렇게 될 줄 알면서 우리는 왜 헤어지지 않았던 것일까 사랑보다 더 지독한 형벌은 없어서 낡은 소파에서 너는 새우잠을 자고 나는 딱딱하게 굳은 붓끝을 물에 적시며 울었다 내가 너를 버리려 해도..
2020.02.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