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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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일 / 물고기와 산다는 것
김중일 / 물고기와 산다는 것 물고기와 산다는 것에 대해 말하는 상처투성이 한 아이의 두 눈에서 물고기가 뚝뚝 떨어졌다. 물고기를 주워 불에 구웠다. 두툼하고 부드러운 하얀 살을 뜯으며 배를 채웠다. 아이를 잃고 산다는 것에 대해 말하는 한 엄마의 두 눈에서 한 세상이 전봇대보다 길게 뚝뚝 떨어졌다. 떨어진 세상의 표면에 달라붙은 창문이 젖은 물고기 비늘처럼 반짝였다. 떨어지 물고기처럼 세상을 주워, 밤의 창문으로 긁어내고 불에 구웠다. 그을린 세상으로 배를 채우고 뼈만 앙상한 세상을 깊은 밤에 풀어놓았다. 온종일 슬픔을 집어먹고 저녁이면 다시 살이 꽉 차오를 것이다. 아침에 문밖으로 나가려는데 신발 속에 가시처럼 뼈만 남은 물고기가 누워 있다. 김중일 / 물고기와 산다는 것 (김중일, 가슴에..
2020.08.24 -
이소호 / 아무런 수축이 없는 하루
이소호 / 아무런 수축이 없는 하루 밤에는 낮을 생각했다 형광등에 들어가 죽은 나방을 생각했다 까무룩 까마득한 삶 셀 수 없는 0 앞에서 우리 대각선으로 누워 식탁에 버려진 아귀의 시체를 센다 삭아 가는 아귀의 눈알을 판다 우리는 저녁으로 아귀가 저지른 잘잘못을 울궈 먹었다 벙긋 벌리고 헤집고 닫는다 나는 곰팡이가 핀 아귀찜의 여린 살을 발라 먹는다 엄마는 부엌에서 아귀를 발라 내게 입힌다 나는 가방도 되고 통장도 되고 남편도 된다 면장갑에 고무장갑을 끼고서야 내 손을 잡는 엄마 남기지 마 이런 건 가시까지 씹어 먹는 거야 엄마는 내 입을 벌리고 젖을 물렸다 엄마는 말아 먹는 것을 좋아하니까 나는 입안 가득 우유를 쏟고 우유가 묻은 팬티를 입고 우유가 묻은 손가락을 목구멍에 넣고 삼키지..
2020.07.03 -
복효근 / 타이어의 못을 뽑고
복효근 / 타이어의 못을 뽑고 사랑했노라고 그땐 또 어쩔 수 없었노라고 지금은 어디서 어떻게 사는지도 모를 너를 찾아 고백하고도 싶었다 ―그것은 너나 나의 가슴에서 못을 뽑아버리고자 하는 일 그러나 타이어에 박힌 못을 함부로 잡아 뽑아버리고서 알았다 빼는 그 순간 피식피식 바람이 새어 나가 차는 주저앉고 만다 사는 일이 더러 그렇다 가슴팍에 대못 몇 개 박아둔 채 정비소로 가든지 폐차장으로 가든지 갈 데까지는 가는 것 갈 때까지는 가야 하는 것 치유를 꿈꾸지 않는 것 꿈꾼대도 결국 치유되지 않을 것이므로 대못이 살이 되도록 대못을 끌어안는 것 때론 대못이 대못 같은 것이 생이 새어나가지 않게 그러쥐고 있기도 하는 것이다 복효근 / 타이어의 못을 뽑고 (복효근, 따뜻한 외면, ..
2020.03.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