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우근 「파피루아」
우리는 선생님의 인솔 아래 스케치북을 들고 공원으로 향했다. 친구들은 팻말이 꽂힌 나무를, 짹짹거리는 작은 참새를, 하늘을 떠다니는 구름을 그리기 시작하고 나의 눈앞에는 푸른 나비가 어른거렸다. 일회용 카메라를 드는 사이 다른 세계로 떠난 나비를 스케치북에 되살렸다. 방과 후에는 도서관에서 나비 도감을 펼쳐 보았다. 삼천 종이 넘는 나비를 한 마리씩 넘기는 사이에 책을 읽던 친구들은 떠나가고, 해는 저물어 가고, 공원에서 본 나비를 찾지 못했지만 도서관을 나온 푸른 저녁에 나는 문득 파피루아라고 불러 본 것이다. 그리고 파피루아는 종교가 없는 내가 대성당에서 처음 기도를 올릴 때 떠올랐다. 군복을 입은 전우들은 각자의 소원 속에서 눈을 감았다. 내가 파피루아라고 속으로 말하면 검은 ..
2022.0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