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홍섭 / 터미널
이홍섭 / 터미널 젊은 아버지는 어린 자식을 버스 앞에 세워놓고는 어디론가 사라지시곤 했다 강원도하고도 벽지로 가는 버스는 하루 한 번뿐인데 아버지는 늘 버스가 시동을 걸 때쯤 나타나시곤 했다 늙으신 아버지를 모시고 서울대병원으로 검진받으러 가는 길 버스 앞에 아버지를 세워놓고는 어디 가시지 말라고, 꼭 이 자리에서 서 계시라고 당부한다 커피 한 잔 마시고, 담배 한 대 피우고 벌써 버스에 오르셨겠지 하고 돌아왔는데 아버지는 그 자리에 꼭 서 계신다 어느새 이 짐승 같은 터미널에서 아버지가 가장 어리셨다 이홍섭 / 터미널 (이홍섭, 터미널, 문학동네, 2011) https://www.instagram.com/donkgrine/
2020.02.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