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못(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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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설야 / 은하카바레
이설야 / 은하카바레 은하카바레 뒷문에서 아버지가 나왔다 나는 여인숙 난간에 기대어 책을 읽고 있었다 아버지는 슬픔을 달래느라 카바레에다 밤을 억지로 구겨넣었던 것 거미줄로 목을 감은 전봇대 불빛을 모으느라 눈이 캄캄해지는 밤 아버지는 불빛을 여기저기 붙이고 있었다 그 불빛에 찔려 오랫동안 아무것도 똑바로 쳐다볼 수 없었다 백구두 소리가 부엌문을 열면 내 몸 어딘가 구멍이 숭숭 뚫려 쏟아질 것만 같아 나는 해바라기 씨앗처럼 불어나는 새까만 음악 속으로 자꾸만 숨어 들어갔다 그 속에는 슬픔을 북북 찢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한계단 한계단 내려가면 깊은 연못이 연못 속에는 나와 얼굴이 같은 소녀들이 수장되어 있었다 이설야 / 은하카바레 (이설야, 우리는 좀더 어두워지기로 했네, 창비, 20..
2020.11.16 -
양안다 / 다큐멘터리
양안다 / 다큐멘터리 나는 꿈에 잠겨 있는데 너는 물속에서 나오지 않았다 애정과 증오가 반복되었다 너는 그것이 마음이라 했다 아무도 모르게 죽을 수 있는 곳을 찾고 싶었다 누구도 우리가 어긋났다고 말해 주지 않았다 몸을 구기고 마음을 자를 수 있다면 어디에 보관하는 게 좋을까 너는 투명하게 웃는다 미소가 옅어진다 속력을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너와 내가 같은 마음에 가담했다는 것이 무섭다 지난 꿈에서 너는 익사하고 있었다 너는 영혼이 무겁다고 했다 고요한 연못을 바라보는 중이었다 양안다 / 다큐멘터리 (양안다, 백야의 소문으로 영원히, 민음사, 2018) https://www.instagram.com/donkgrine/
2020.09.12